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일 정상회담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도외시하고 우리 기업이 징용 피해자에게 먼저 변제하겠다고 약속했다. 피해자들은 이를 수용치 않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일본의 언론은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까지 거론했다고 보도했지만 대통령실은 아무런 해명이 없다. 일본 교토 통신은 초미의 관심사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일본 농수산물 수입 철폐 문제도 대통령이 대국민 지속적 설득을 약속하겠다는 보도까지 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국내의 강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 통 큰 양보를 해 버렸다. 대통령은 물잔의 반을 한국이 먼저 채웠으니 상대국인 일본이 앞으로 반을 채우는 선의를 기대한 모양새다. 전례 없는 대통령의 통 큰 양보가 우리의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한일 정상회담 후 국내의 반대 여론은 예상대로 비등하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다시 30%대 초반까지 하락하였다. 대통령은 이러한 여론에 급급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낮은 지지율은 국정의 추동력을 상실케 한다. 야당은 연일 대통령의 대일 외교를 외교적 참사로 규정하고 국회의 국정조사까지 요구하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이번 회담을 대일 굴욕 외교, 외교적 참사라고 혹평하고 있다. 전국 여러 곳에서 온·오프라인을 통해 대통령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에 대통령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고 한일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상승의 효과를 가진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정상회담의 핵심인 강제징용 문제에 일본의 사과는 차치하고라도 피해국인 우리 기업의 배상은 국내의 민심을 크게 거슬렀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은 피해국에 대해 일관되게 반성하였다. 독일 사민당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하여 자신들의 과거사를 무릎 꿇고 사죄하였다. 해방 이후 일본 정치인 중 한 명도 한국을 방문하여 진심 어린 사과를 한 적은 없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회담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담화 형식의 사과만 있었을 뿐이다. 대부분 일본 정치인은 아직도 일본의 한반도 식민화에 대해 진정한 반성은 없다. 심지어 일본의 직전 총리 아베는 과거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있었다. 몇 해 전 일본 아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일대를 둘러본 적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정한론(征韓論)자 요시다 쇼인의 학숙, 초대 총독 이토 히로부미의 고택까지 둘러보았다. 명치유신을 통한 일본의 한반도 식민론자의 사상적 뿌리가 그렇게 깊음에 놀랐다. 그것이 일본 정치인들의 오늘의 오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한일 관계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 지향적으로 가야 한다는 원론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과거를 묻지 않는 일본의 선의에 기댄 일방적 양보가 얻은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 현재로서는 제3자 변제 관련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나 신일본제철의 참여도 기대할 수 없다. 지난주 발표된 일본 초등 교과서는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심지어 일본의 언론은 '한국을 조금 때렸더니 무릎까지 꿇었다'는 주장까지 늘어놓아 우리의 자존심마저 꺾어 버렸다. 4월 총선을 앞둔 일본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8%나 상승하였다. 한일 관계의 결속이 우리의 대중국 무역 역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명약관화하다.
흔히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라고 한다. 정상회담은 양국의 실익이 담보되는 협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부의 외교는 그간 여러 차례의 외교적 실책으로 점철되었다. 영국의 조문 외교, 아랍에미리트와 미국에서의 대통령 실언은 한일 정상회담의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심기일전하여 외교 테크노크래트의 자문에 충실한 실리 외교를 펼쳐야 한다. 일본의 선의의 기댄 외교는 아마추어 외교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대통령의 즉흥적 결단이라는 지적도 많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6위의 군사강국 위상을 토대로 대일, 대미, 대중 외교에 보다 당당히 나서 국익을 챙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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