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대통령의 서문시장 사랑

입력 2023-04-02 18:58:13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정치인은 서민을 챙긴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전통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주름진 손을 부여잡고, 어묵·떡볶이를 사 먹는 장면을 카메라에 노출시킨다. 그런데 왜 하필 시장인가? 시장은 서민들의 공간이다. 그리고 골목이 좁다. 사람이 조금 모여도 꽤 많은 인파가 모인 듯한 앵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게다가 상인들 '리액션'도 괜찮다. 이것이 바로 백화점은 안 되지만 시장은 되는 이유다.

특히, 대구 서문시장은 우리나라 거물급 정치인들의 필수 방문 코스다. 서문시장은 '보수의 성지'로 일컬어지지만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유력 정치인들이 찾는다는 점에서 '정치 1번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아서 지지층을 결집했다. 진보 진영 유력 정치인들도 일부 야유를 감수하면서 서문시장을 찾는다.

서문시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는 대선 주자 및 후보 시절 네 번,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번 서문시장을 찾았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않은 행보다. 정치인에게 보여주기식 행보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은 의례적 행차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서문시장 사랑은 여느 정치인들과 결이 달라 보인다.

서문시장 이전 100주년 기념행사에 온 윤 대통령 부부를 보기 위해 1만 명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대선 전날 마지막 유세에서 서문시장 상인들이 보여준 뜨거운 지지와 함성을 잊을 수 없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힘이 난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구와 인연이 깊다. 검사 생활을 대구에서 시작했으며 대구지검 특수부장(2009년), 대구고검 검사(2014년)를 각각 지냈다. 그는 대구에서 느낀 각별한 추억을 인터뷰 등에서 밝힌 바 있다. 어렵던 시절 위로가 된 지역, 대선에서 자신에게 가장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지역, 그 상징적 공간이 바로 서문시장인 듯하다.

대통령은 막중하고도 고달픈 자리이다. 대한민국의 명운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무게감과 압박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서문시장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한 것은 의미가 있다. 윤 대통령은 서문시장에서 얻은 에너지를 이제 국정 운영에 쏟아부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위기의 파고가 불어닥치고 있다. 무역이 13개월 연속 적자 행진이다.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내수도 극심한 침체 국면이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일삼고 있으며 미·중 간 패권 경쟁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상황이다. 좌파 정부가 쌓은 각종 폐단과 정책 실패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거대 야당은 협조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안타깝게도 윤 대통령이 서문시장에서 확인한 성원과 지지는 전국적 현상이 아니다. 국정 지지율은 30~40%대에 갇혀 있다. 이제는 냉정한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들의 불행으로 직결된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잘 버무려 장기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며, 때로는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국가 장래를 위해 소신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이번에 서문시장을 찾은 윤 대통령은 "기득권이 아닌 땀 흘리는 국민들이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발이 닳도록 뛰겠다고도 했다. 서문시장에서 한 그 약속, 반드시 실천하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서문시장에 모인 성원에 대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