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곽훈섭 씨의 恨 "죽기 전 부친 독립운동 인정됐으면…"

입력 2023-04-03 10:53:10 수정 2023-04-03 21:50:45

이상화와 함께 'ㄱ당'을 창당한 독립운동가 곽동영 선생의 아들
가세가 기울도록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독립유공자 인정 못 받아
동족상잔 안된다며 군대 요직도 거부… 한국서는 좌익분자로 치부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강점기 시절 'ㄱ당' 소속으로 독립 운동을 펼친 곽동영 선생의 아들 곽훈섭 씨가 17일 대구보훈병원의 한 휴게실에서 진행된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훈청에 제시한 부친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 자료를 내보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은 아버지의 독립운동이 정부로부터 인정받는 것뿐입니다."

곽훈섭(91) 씨는 하루하루 간절함을 삼킨다.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인정받기 위해 애쓸 시간이 이제는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국가유공자 포상 신청이 여러 차례 떨어지는 동안 곽 씨는 어느새 아흔의 노인이 됐다.

대구보훈병원에서 만난 곽 씨의 얼굴에는 수심이 깊게 들어차 있었다. 취재진과의 만남을 앞두고 긴장감에 입술까지 부르텄다며 마스크를 벗어 보여주기도 했다. 곽 씨의 선친은 독립운동가 곽동영 선생으로 노차용, 이상화 등과 함께 대구에서 'ㄱ당'을 창단한 창립 멤버다. 'ㄱ당'은 1928년 대구에서 조직된 항일 비밀결사 조직으로 만주 지역 독립군 보강을 위해 유능한 청년을 발굴하고 광둥군관학교에 유학을 보내는 일을 했다.

곽 선생은 대구 달성군 현풍읍의 부유한 유가 집안의 자제였다. '현풍의 곽가(家)'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자였던 집안은 독립운동 단체에 활동자금을 지원하느라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곽 씨는 아버지가 밤마다 찾아오는 아무개에게 돈뭉치를 전해주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고 했다.

곽 씨는 "서너 살 때부터 4년간 아버지와 현풍읍을 떠나 중구 일송여관에 묵었다. 낮에는 미나카이 백화점에서 아버지가 양복과 양과자를 사주셔서 좋다가도 밤만 되면 이름 모를 사람들이 찾아와 돈을 받아 가서 무서운 마음에 울기도 했다. 커서 생각해보니 그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주던 상황이었던 걸로 사료된다"고 증언했다.

정부는 곽동영 선생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방 후 월북했다는 이유에서다. 월북의 이유는 당시 맥락을 살펴보면 그리 단순치 않다. 곽 선생은 건국준비위원회에 몸담은 탓에 해방이 되자 사회주의 지향의 좌익분자로 분류됐다. 한국 전쟁 이후 남한에 있으면 강성 좌익으로 분류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곽 선생을 포함한 항일 투사들을 불안케 했던 탓에 월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생은 북한에서도 환영받는 존재도 아니었다. 한국전쟁 시기, 북한이 서울을 2차 점령했을 때 노동당 서울인민위원회가 곽 선생에게 군대의 요직을 권했으나 곽 선생이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일본인에게 칼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에게 칼을 겨누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곽 선생은 남에서는 좌익분자로, 북에서는 우익으로 치부됐다.

곽 선생은 월북 후에도 동족 간의 전쟁을 종식하고자 노력했다. 1952년 초 미국 정보기관이 곽 선생의 부인인 김혜숙 여사를 월북시켰고, 곽 선생을 통해 북한당국의 휴전 의향을 탐지하게 한 사실도 비화로 기록에 남아있다.

해방을 맞은 민족에게 동족상잔이라는 또 다른 아픔의 역사가 관통하는 동안 항일 독립운동에 일생을 투신한 곽 선생은 어느 진영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회색분자로,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선생의 아들 곽 씨는 이 억울한 사연을 언론에 알렸고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포상 신청을 여러 차례 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곽 선생이 국가유공자 포상 신청에서 탈락한 이유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해방 이후 행적이 모호하다는 것이 보훈처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며 "해방 후 행적에 대해 입증할 자료를 보충한다면 심사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곽동영 선생 일가에 대해 연구해온 조해정 영남대 대구경북학연구소 연구원은 "현풍 곽 씨 집안이 조국을 위해 일생을 투신한 사실은 변함이 없다"며 "하루라도 빨리 한반도에서 이념의 장막이 걷히고, 과거의 잣대로 소외됐던 독립투사들이 재평가되는 날이 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강점기 시절 'ㄱ당' 소속으로 독립 운동을 펼친 곽동영 선생의 아들 곽훈섭 씨가 17일 대구보훈병원의 한 휴게실에서 진행된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훈청에 제시한 부친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 자료를 내보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