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초대석] 한일 관계, 미래가 답이다

입력 2023-03-27 15:52:13 수정 2023-03-27 19:04:00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일 관계는 '적대적 제휴'(Alignment Despite Antagonism)라고 한다. 전직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이자 조지타운대 교수인 한국계 빅터 차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적대적 제휴란 '적과의 동침'과 같은 말이다. 사이 나쁜 적끼리 서로 협력한다는 뜻이다. 두 나라는 역사와 영토를 놓고 적대적이다. 하지만 경제·안보에서는 친구다.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같이하는 이웃이기도 하다. 한일 관계의 얼굴은 이렇게 여럿이다.

한국은 1945년 해방 후 20년간 일본과 국교 없이 지냈다. 일본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이 타결되면서 비로소 '적대적 제휴' 관계가 맺어졌다. 미국이 자유 진영의 결속을 강력히 촉구했다. 한국은 경제발전의 종잣돈이 절실했던 때였다. 이렇게 구축된 협력 체제가 이른바 '65년 체제'다. 그 체제에서 한미일 3국은 공산 진영에 맞서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고, 한국은 경제발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65년 체제'가 붕괴했다.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했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12년 만이었다. 양국 관계의 파탄은 두 가지 역사 문제 때문이었다. 첫째는 일본군 종군위안부, 둘째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 문제다. 한국은 1965년 한일회담 때 일본 정부로부터 유·무상 총 5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받았다. 그리고 배상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그 돈으로 포항제철을 짓고, 경부고속도로를 깔았다. 강제징용자 개인에게는 무상 3억 달러의 5.4%인 약 29억 원만 지급했다. 경제가 다급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2년 강제징용자 개인의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1965년 한일회담의 합의를 부인한 것이다. 일본 정부와 강제징용을 한 일본 기업은 당연히 반발했다. 1965년에 다 끝났다는 것이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한일회담 때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공개 증언하면서 비로소 알려졌기 때문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양국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하고,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걸로 약속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이 합의를 파기했다. 피해자의 의사가 배제되었다는 이유였다. 일본은 정부 간 약속의 파기라고 한국을 강력히 비난했다.

이 두 문제로 한일 관계는 지난 12년간 파국 상태였다. 2019년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했다. 경제보복이었다.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로 맞섰다. 자해적 안보 보복이었다. 2017년부터 한국 외교백서에는 일본에 대해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소중한 이웃이자,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동반자'라는 규정이 삭제되었다. 일본 외교청서 역시 한국에 대해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규정을 없앴다.

지난 10년 넘게 '65년 체제'가 무너진 결과 누가 이익을 보았나? 우리와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 우리 안보를 위협하고 경제적으로 경쟁하는 나라다. 북한에 가장 큰 이익이고, 다음이 중국이다.

한국은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아니다. 지난해 BAV그룹,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공동 조사에서 세계 국력 랭킹(Power Rankings) 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북한 핵이 현실화되며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군사력 역전이 일어났다. 사드 배치 후 중국의 압력도 선을 넘었다. 일본은 2010년 중국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빼앗겼다. 센가쿠 열도의 영유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중국의 압력에 무릎을 꿇었다. 일본의 최대 화두는 중국의 부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미국 전 국가안보보좌관 브레진스키(Z. Brzezinski)는 한일 협력이 위기 극복의 가장 강력한 대안이라고 권고한다. 문제는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는 정치가들의 무덤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섰다. 야당은 '삼전도 굴욕'이라고 비난하고, 국민의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 일본 기시다 정부는 4월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 사면초가다. 하지만 현재와 과거를 경쟁시키면 미래를 놓친다. 역사는 윤 대통령의 결단을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