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비례대표 50명 늘리겠다는 여야

입력 2023-03-19 18:28:00 수정 2023-03-19 19:19:27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몇 년 전 대구의 한 정치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너무 적다. 국회의원들 위세가 등등한 것은 그 수가 너무 적어서이다.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 늘려 희소성을 떨어뜨려야 서로 경쟁하고 제대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다."

납득하기 힘든 논리였다. 물론, 그의 말에 타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다. 선출직 국회의원 한 명당 인구 비율을 보면 OECD 평균은 9만 6천 명인데 우리나라는 16만 5천 900명이다. 독일(13만 6천 명)·프랑스(11만 3천 명)·영국(9만 6천 명)에 비해 그 수가 적다.

원론적으로야 국회의원 정수가 확대되면 의회 권력 참여자들이 늘고 기득권화를 방지해 대의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우리나라 현실에 적용해 일반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국회의원 수를 늘린다고 우리나라 대의 민주주의 수준이 과연 높아질 수 있을까? 국회의원 정수를 도대체 얼마나 늘려야 희소성을 떨어뜨릴 수 있단 말인가?

국회의원 수를 웬만큼 늘려 봤자 긍정적 효과가 생길 리 없다고 나는 본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여의도 특권층이 그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이는 공천권을 거머쥔 계파 정치 보스들만 반색할 일이다.

그런데 내년 4월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내용의 선거제 개편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세 가지 안을 내놨는데 그중 1·2안이 비례대표를 50명씩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민의의 대표성을 높인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지만, 실상은 자기들 말 잘 듣는 '임명직 국회의원'(비례대표)을 늘리겠다는 속셈으로 읽힌다.

비례대표 공천은 계파 정치의 보스나 공천권자의 사천(私薦) 놀이터였고 '내 사람 심기' 악용 도구였다. 그 과정에서는 논란과 금품 수수 등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대구시장이 쓴소리를 냈다. 홍 시장은 "어떤 경우라도 국회의원 증원은 결단코 반대한다" "여당에서 만약 그런 합의를 한다면 지도부 퇴진 운동도 불사해야 할 것"이라고 SNS에 밝혔다. 어조가 매우 강하다.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홍 시장 주장에 동조한다는 내용 일색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받는 대우와 특권을 보면 가히 '제왕적 국회의원'이라는 말이 나와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의원 한 명당 연간 7억 원 가까운 세비가 들어간다.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특권만 해도 수십 가지다. 하지만 2015년 국가 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국회의원들의 보수 대비 효과성은 26개 직업군 가운데 26위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생산성 없는 대표적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왔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려는 시도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여러 번 있었지만 번번이 관철되지 못한 것은 국민 뜻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회의원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집단으로 낙인찍혀 있으니 이번에도 그들의 양두구육(羊頭狗肉)은 거센 저항과 역풍에 봉착할 것이다. 국회의원 수가 적어서 대한민국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아니다. 여야는 국회의원 비례대표 정수를 늘리겠다는 시도를 멈추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