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추풍령과 남방한계선

입력 2023-03-15 20:26:46

이대현 논설실장
이대현 논설실장

김관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경상북도 도지사 재직 때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 사이에 있는 '추풍령'을 자주 언급했다. 추풍령이 언제부터인가 수도권과 지방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추풍령 이남으로는 돈도, 사람도 내려오지 않는 현실을 통렬하게 꼬집은 말이었다.

추풍령과 비슷한 것으로 '남방한계선'도 있다. 대기업들이 예전엔 경기도 수원, 요즘엔 충북 오송을 투자의 남방한계선으로 지칭하면서 지방 투자 불가의 변명으로 내세운 것이다. 지방에 생산 라인을 깔면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대기업들의 논리에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들도 반박하지 못한 면이 없지 않았다.

추풍령·남방한계선은 대한민국이 '수도권 공화국'임을 보여주는 말이다. 면적이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 50%가 밀집해 있다. 매출 1천대 기업의 86.9%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어느 나라든 조금씩 있지만 우리처럼 심각하지 않다.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가 심한 편이지만 20~30%에 머문다. 그에 비해 우리는 수도권이 공룡에 비유될 정도로 비대하다.

사람과 돈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지방 스타트업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추풍령·남방한계선을 허무는 낭보(朗報)여서 반갑기 그지 없다. 지난달 삼성이 대구 북구 삼성창조캠퍼스에서 'C랩 아웃사이드 대구 캠퍼스'를 열었다. 서울에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C랩 아웃사이드를 통해 매년 20곳의 스타트업을 지원해 온 삼성이 지방에서도 우수 스타트업 선발·육성에 나선 것이다. 이에 앞서 포스코는 2021년 7월 포항 포스텍 캠퍼스 안에 스타트업 육성 공간 '체인지업그라운드 포항'을 개소했다.

지난해 수도권의 신규 벤처 투자액은 4조9천485억 원으로 전국 벤처 투자액(6조1천376억 원)의 80.6%에 달한다. 벤처기업의 64.8%(1만8천617개), 특히 업력 3년 미만 스타트업은 70.7%(5천318개)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삼성, 포스코가 만든 스타트업 캠퍼스를 통해 스타트업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란다. 수도권의 사람과 돈이 추풍령과 남방한계선을 넘어 지방으로 와야만 지방이 살고, 대한민국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