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스타트업 줄도산 우려

입력 2023-03-11 07:35:40 수정 2023-03-11 07:40:05

예금인출→주가폭락→자본조달무산→폐쇄

미국 서부 스타트업들의 돈줄 역할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예금 인출 사태와 주가 폭락으로 초고속 파산했다. 미국 역대 2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10일(현지시간)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후 FDIC는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이라는 이름의 법인을 세워 SVB의 기존 예금을 모두 새 은행으로 이전하고, SVB 보유 자산의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FDIC 조치에 따라 25만달러의 예금보험 한도 이내 예금주들은 13일 이후 예금을 인출할 수 있고, 비보험 예금주들은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액에 대해 FDIC가 지급하는 공채증서를 받아 갈 수 있다.

FD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SVB의 총자산은 2천90억달러, 총예금은 1천754억달러다.

이번 파산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무너진 워싱턴뮤추얼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SVB는 미국 16위 은행이다. 1983년 설립돼 캘리포니아주와 매사추세츠주에서 모두 17개 지점을 보유한 신생 기술기업 전문 은행이다.

SVB는 보유 중이던 국채에 대한 대규모 손실을 발표한 뒤 불과 이틀도 되지 않아 급속도로 파산했다.

SVB는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들의 예금이 줄어든 탓에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매각했고, 18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다. 지난 1년간 급격하게 오른 기준 금리 여파로 기술기업들의 돈줄이 마르며 신규 자금이 끊겼고, 이 여파로 비싸게 샀던 채권을 낮은 가격에 판 것이다.

이후 모회사 SVB파이낸셜그룹의 주가는 80% 이상 하락했고, 결국 대량예금인출 사태까지 벌어졌다.

곧바로 SVB는 22억5천만달러의 증자 계획이 무산되자 회사 매각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금융당국은 인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주지 않고 이례적으로 빠르게 칼을 빼들었다.

SVB의 위기 소식이 전해지면서 벤처 캐피털은 자신들이 투자한 스타트업들에 SVB로부터 자금 인출을 촉구하기도 했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벤처 캐피털 회사인 '페어 VC'는 지난 9일 "여러분 모두가 보고 있듯이 SVB의 상황을 고려해 SVB에 예치된 현금을 다른 은행으로 옮기라고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이날도 퍼스트리퍼블릭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 주가가 장중 20% 이상 폭락하는 등 미국 4대 은행의 시가총액이 하루만에 약 520억 달러(약 69조 원) 증발했다.

다만 대형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일반 은행들이 기술 분야 스타트업에 특화된 SVB처럼 갑작스러운 인출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날 연준 등 관계 기관과 만나 SVB 사태 대책을 논의하면서 은행 시스템은 여전히 유연하고 당국은 이 같은 일에 대응할 효과적 조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재무부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