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이재명은 과연 '용의자 X'일까?

입력 2023-03-12 18:39:59 수정 2023-03-12 19:06:37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는 임종 직전 문병 온 친구들에게 자신의 꿈 얘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병약하고 가난한 무리에 이어 고상한 옷차림으로 정치를 논하는 다른 무리를 만났다는 내용이다. 후자(後者)에는 플라톤, 플루타르코스도 있었다.

그들이 각각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밝힌 뒤 사라지자 신비한 목소리가 "너는 어느 무리와 함께 있고 싶으냐?"고 물었다. 마키아벨리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축복받은 이들과 천국에서 심심하게 지내기보다는 고귀한 인물들과 지옥에 있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를 두고선 후대의 위작이란 견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위대한 철학자들이 "신의 뜻에 어긋나는 지식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상상은 마키아벨리답다. 더욱이 조국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영원히 고통받는다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니….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결기를 갖춘 정치인은 매우 드물다. 외려 목표 달성을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대가들만 판을 친다. 세상을 바꾸려 애쓰는 개혁가인 척해도 알고 보면 구린내 진동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로 최근 한 언론사가 MZ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회 또는 정치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8%에 그쳤다. 정치 선진국이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갤럽의 지난해 국민 인식 조사에서 정치인(연방의원)은 정직성과 윤리성이 가장 낮게 나타난 직업이었다.

정치 혐오는 정치인들의 자업자득이다. 자신의 경기도청 비서실장 출신 전 모 씨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반응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검찰의 미친 칼질" 탓이라는 그와 민주당의 강변에 두려움마저 느낀다는 이가 적지 않다.

전 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에 대한 깊은 서운함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측근을 진정성 있게 관리해 달라" "함께 일한 사람들의 희생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라고 썼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 본인의 책임을 알고 있지 않느냐"는 대목도 있다고 한다.

어디 전 씨뿐이랴. 이 대표 주변 인물 네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데는 그가 연루된 사건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특정인과 관련해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연거푸 벌어진 것은 결코 괴담이설(怪談異說)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 대표의 각종 의혹을 둘러싼 공방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어느 개그맨은 "행복은 뷔페에 있다"며 입담을 뽐냈지만, 이 대표가 받는 뷔페식 혐의에 국민은 불행해지고만 있다. 그를 지지하는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어쩌면 이 대표는 일련의 일은 대선에서 0.74%의 표를 더 받았다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회의원 불체포특권과 극성 팬덤에 기대어 책임을 회피하려 해선 다음 대선도 기약하기 어렵다. 법원에서 떳떳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옳다.

그가 자신의 의혹을 "검찰의 소설"이라고 수차 주장한 터라 문득 어리석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파탄을 부르기도 하고 생명을 구하기도 하는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우리 정치가 환골탈태할 계기를 제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망상이다. 살인을 저지른 옆집 모녀를 구하려고 주인공이 또 하나의 살인을 저질러 스스로 죄를 뒤집어쓴다는 일본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