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남쪽 용 머리 모양 터…노태우 대통령 배출한 명당
교하 노씨 집성촌에 위치한 생가…아룡이 승천의 때 기다리는 형상
거대한 구렁이 온몸 휘감는 태몽…집 뒤편 산기슭에 조부모 묘소
팔공산은 신라 시대 오악(五嶽) 중 중악(中嶽)으로 불릴 만큼 산세의 기상이 출중하고 수려하여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팔공산 남쪽 자락에는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노태우를 배출한 용진(龍津) 마을이 있다. 지명 유래에는 동리 한복판에 진(津)이 있었는데 용의 머리 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용진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는 현재 안채와 사랑채, 외양간 등이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살아있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용진 마을은 교하 노씨(交河 盧氏)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노 전 대통령은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육군참모총장 또는 그 이상의 자리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되었다면 인생이 아주 무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당시 국가가 혼란 속에 빠져 있을 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영광과 오욕이 교차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게 되었다.
◆노태우 대통령 고향 용진마을
노태우(1932~2021) 전 대통령은 부친 노병수와 모친 김태향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결혼한 지 8년 동안 아이가 없어 노 전 대통령 어머니는 팔공산 부처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태몽을 꾸었는데 '어머니가 콩밭을 매던 중 풀숲에 큰 구렁이가 숨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 집으로 도망쳐 왔는데 뒤따라온 구렁이가 온몸을 휘감아 소스라쳐 놀라 잠을 깼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용꿈'이라고 좋아하며 이름을 태룡(泰龍)이라 지으려 하다가 이름이 너무 좋으면 오히려 불길하다하여 어리석을 '우(愚)' 자로 바꿔 태우(泰愚)라고 지었다'라고 한다.면서기였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경북고등학교 재학 중 6·25가 일어나자 학도병으로 군에 입대하였고 다음 해인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정규 1기)로 입학하여 군과 인연을 맺었다. 1955년 소위로 임관한 노 전 대통령은 이후 육군공수특전여단장, 육군9보병사단장 등 군의 핵심 요직을 거쳤다. 12·12 사태를 거치면서 육군수도경비사령관, 국군보안사령관에 이어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민간인이 된 그는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이어 민주정의당 최고위원에 이어 총재가 되었다. 1987년 서울 도심의 '6월 항쟁' 속에서 6.29 선언을 통해 차기 대권주자의 위치를 확보한다. 1988년 13대 대통령 선거에 나가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제6공화국 최초의 민주주의 직선제로 당선된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시작과 함께 개최된 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북방정책을 추진해 소련, 중국 등 45개 공산권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는 성과를 이루었다. 남북한 각각 동시 유엔 정식 가입,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를 발표함으로써 남북 긴장 완화, 서해안고속도로, 경부고속철도(KTX),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기공 등 기반 시설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치적이 있다.
◆용의 기운을 받고 태어나
흔히들 대통령은 하늘이 정한다고 한다. 그것은 천기(天氣)를 받은 명당 지기(地氣)를 받아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터의 기운이 그의 일생에 영향을 끼쳤는지 풍수학적으로 규명해 본다.
노 전 대통령은 항상 2인자 역할을 많이 했고 앞에 나서기를 싫어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기질은 생가에서 북동쪽 방향 약 1킬로 지점 계곡 안쪽에 있는 상계 묘소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 자리는 아룡(兒龍)이 승천의 때를 기다리면서 깊은 산속에 납작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 그의 이마에 있는 깊은 주름이 용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증거이기도 하다.
생가는 용진마을 주 혈처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생가 터 청룡 방에는 서기 어린 암석이 눈길을 끈다. 팔공산 정기가 여기에 다 뭉쳐 있다고 평하기도 하나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 청룡은 강한 데 비하여 백호는 허하며, 계곡물이 생가 터를 치는 형국이다. 따라서 생가 터는 소 명당자리라 할 수 있다. 이곳의 주 혈처는 여의주를 안으로 하는 자리이다
조부모 묘소는 생가 뒤편 산록에 있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발조한 산줄기가 서봉, 파계봉을 거치고 남으로 동남으로 꿈틀거리면서 내려오다가 '거저산'을 세운다.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뻗어 가던 산줄기가 남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급하게 내려오다가 좌측으로 가지를 뻗어 조부모 묘소의 자리를 만든다. 형기적으로 볼 때는 좀 특이한 곳으로 용의 귀에 해당하는 자리이다. 간좌 곤향(艮坐 坤向)의 중 명당으로 조모를 정혈에 모신 것으로 본다.
조부모 묘소와 생가에서 보면 주위 사격이 예사롭지 않다. 청룡 넘어 알현사(謁見砂, 임금을 조석으로 뵙는 사격)가 있고, 안산이 장군사(將軍砂)이다. 그런데 이 안산이 너무 높다. 높으면 나에게 압(壓)을 가할 수 있다. 압을 당하면 후손이 이금치사(以金致死)를 당할 수 있고, 힘을 크게 쓰지 못한다. 이어 있는 토성체의 사격이 바로 군왕이 배출된다고 하는 일자문성(君王砂)이다.
◆건좌 손향(乾坐 巽向)의 자리
군왕사는 우뚝 높이 솟아 있어야 제격인데 이곳의 군왕사는 양옆 높은 사격들 사이에 끼어 있다. 끼어 있으니 힘을 쓸 수 없다. 그러니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물태우'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또 퇴임 후에 불명예스러운 사건들도 마지막 배반하는 산의 모습에서 투영된다. 이러한 사격을 종합해 보면 '참고·용서하고·인내 한다'는 평소 그의 신념과 인생 경로가 거의 일치한다.
부친 묘소는 파계사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약 1킬로 정도 거리의 우측 산기슭에 있다. 묘소는 처음부터 이 자리에 모신 것은 아니고 장교 시절에 이장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부친 묘소는 입수 용맥이 푹 퍼져 있고 명당이라 할 만한 뚜렷한 혈증도 보이지 않는다. 또 주변에 습기가 많아 물구덩이 같아 보이지만 이 자리는 장군파수형(將軍擺手形, 장군의 갑옷자락 안에 맺힌 형국)의 대 명당이다. 이런 자리를 누가 쉽게 잡을 수 있겠는가? 지금도 풍수가마다 '명당이다·아니다'하며 갑론을박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한 치의 착오 없는 명사 소점지이다.
장군형이 되려면 기고(旗鼓)가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기고가 완벽하다. 건좌 손향(乾坐 巽向)의 자리로 군 출신인 노 전 대통령에게 많은 힘을 주는 기운이며 특히 이곳은 대권을 잡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의 사격을 다 갖추고 있다. 모친이 별세하자 부친 옆에 쌍분으로 조성하였는데 이 자리는 혈처를 벗어났다. 노 전 대통령이 말년에 희귀병으로 고생한 것도 이 묘소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결론적으로 생가 터의 기운과 모친의 정성 어린 기도, 조부모의 음덕에 더하여 부친의 묘 바람이 결정적 역할을 하여 이룬 결과라고 본다. 이처럼 풍수는 신비한 학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했으며 2021년 10월 26일 89세로 별세했다.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졌다. 평소 북방정책을 추진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고향으로 가지 않고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통일 동산)에 모셔졌다.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
노 인 영 풍수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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