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쇼호스트‧아이돌 그룹… 무궁무진한 '버츄얼 휴먼'의 세계

입력 2023-03-02 15:36:34 수정 2023-03-02 23:01:36

가상 아이돌 그룹 메이브(MAVE:) 데뷔, MV 조회 수1천600만회 돌파
미 CNN 로지‧루시 소개, "한국에서 가상 인간 관련 산업 급성장" 보도
디지털 휴먼 시장 규모 100억3천만달러→5천275억8천만달러 성장 전망

버츄얼 아이돌 그룹
버츄얼 아이돌 그룹 '메이브'(MAVE:).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제공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성 4명이 무대에 올랐다. 격렬한 춤을 추면서 노래 부르고 랩도 한다. 고음도 문제없이 소화해 낸다. 언뜻 봐서는 실력 좋은 평범한 아이돌 그룹 같다. 그런데 모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옷매무새에 흐트러짐도 없다. 이들은 '버츄얼 휴먼'(virtual human‧가상 인간)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메이브'(MAVE:)다.

'디지털 휴먼', '메타 휴먼', '사이버 휴먼'으로도 부르는 버츄얼 휴먼은 사람의 동작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3D(3차원) 캐릭터다.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인 '딥페이크'를 활용해 실제 사람 모델에 이미지를 덧입혀 만들기도 한다. 음성은 사람 목소리를 녹음해 사용한다.

버츄얼 휴먼 시장은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게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메타버스(Metaverse‧3차원 가상현실) 바람이 불면서 함께 성장했다. 버츄얼 휴먼과 실제 사람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메타버스 산업 중심도 점차 버츄얼 휴먼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 광고 모델부터 아이돌 그룹까지
지난달 신인 걸그룹 메이브가 베일을 벗었다. 메이브는 넷마블 계열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가상 인간 아이돌 그룹. 멤버는 시우, 제나, 타이라, 마티 4명이다. 미래에서 온 4명의 아이가 2023년 지구에 불시착했다는 이색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룹명은 'Make New Wave'의 줄임말로 K-POP에 새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데뷔 앨범 타이틀 곡 '판도라'와 수록곡 '원더랜드'의 하이라이트를 공개했다. 메이브는 데뷔를 하자마자 빠르게 인지도를 끌어 올렸다. 판도라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현재 유튜브에서 1천600만 회를 돌파했다.

앞서 버츄얼 휴먼 대중화에 불을 붙인 건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2020년 12월 내놓은 버츄얼 인플루언서(influencer‧대중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로지(ROZY)다. 로지는 실제 인플루언서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일상을 공유하고 누리꾼과 댓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한다.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통이 가능한 형태의 가상 인간을 제시했다.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선호하는 외모를 분석한 뒤 동양적인 얼굴과 신체를 표현했다. 수식어로는 '영원한 22세'를 내세웠다. 개성 있는 외모에 감성과 표현력을 갖춘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로지는 2021년 7월 보험사 신한라이프 CF 모델로 브라운관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GS리테일, 정관장, LF 등의 모델로도 활동해 왔다. 로지 광고료는 중견 연예인 수준인 한편당 3억원에 달한다는 게 광고업계 전언이다.

가상 인간들은 기술 발전과 함께 다양한 영역으로 발을 뻗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롯데홈쇼핑이 개발한 가상 인간 '루시'가 명품 브랜드 가방, 카드 케이스를 소개하는 라이브 커머스(상품을 소개하는 실시간 인터넷 방송)를 진행했고, 케이블TV 딜라이브는 AI 아나운서 '로아'를 주말 권역 뉴스에 도입했다.

AI 기자와 기상 캐스터, 콜센터 상담원 등에 대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방송‧광고 업계는 실제 사람과 달리 활용 범위에 제한이 없고, 방송사고 위험이 적다는 점에서 가상 인간을 선호한다. 지치거나 늙지 않고 사생활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버츄얼 인플루언서
버츄얼 인플루언서 '로지'(왼쪽)와 '루시'. 각 SNS 캡쳐

◆ "디지털 휴먼 시장 10년 새 52배 성장"
업계는 버츄얼 휴먼의 활약 범위가 무궁무진하게 넓어질 거라 보고 있다. 이들이 점차 실제 사람을 대체하면서 기성 유명인 자리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 세계 버츄얼 휴먼 마케팅 시장 규모는 2019년 9조원에서 지난해 17조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또 미국 기술시장조사업체 이머젠 리서치는 디지털 휴먼 아바타 시장 규모가 2020년 100억3천만달러에서 2030년 5천275억8천만달러로 52배가량 커질 거라 예측했다.

한국의 버츄얼 휴먼 산업 성장 속도는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낸다. 미국 CNN 방송은 지난해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와 루시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가상 인간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들은 온라인 생활에 익숙한 젊은 층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호 소통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면서 "가상 인플루언서가 팬덤을 형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메타버스 기반 콘텐츠를 포함해 K-콘텐츠 수출을 확대할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K-콘텐츠 수출전략'을 발표하면서 2027년까지 중동, 북미, 유럽을 중심으로 K-콘텐츠 수출액을 2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2021년 기준 124억달러 수준인 K-콘텐츠 수출액을 연평균 12.3%씩 늘려 2027년 250억달러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 기간 K-콘텐츠 매출이 137조원에서 200조원으로, K-콘텐츠 소비재·관광 수출 유발 효과가 46억6천억달러에서 80억달러로 늘어날 거라 추산했다.

K-콘텐츠 수출 전략은 수출 시장 확장(Expansion), 콘텐츠 산업 영역 확대(Extension), K-콘텐츠 프리미엄 효과(Effect) 활용, 이른바 '3E'다. 웹툰,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국형 플랫폼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연관 산업이 동반 성장하도록 촉진한다.

3E 전략과 더불어 신기술을 활용한 수출 기반도 구축한다. 메타버스가 K-콘텐츠 확산의 가상 거점이 되도록 'K-콘텐츠 메타버스 월드'를 구축하기로 했다. 챗GTP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 AI 아이돌 그룹 등 메타버스 융합 콘텐츠 제작도 지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