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학폭과 부모 찬스

입력 2023-02-28 18:46:40 수정 2023-02-28 20:49:56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모현철 신문국 부국장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하루 만에 물러난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 논란의 후폭풍이 거세다. 학교폭력(학폭) 사안에 대해 대학 입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피해 학생과 '끝장 소송'을 벌인 정 변호사 부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유명한 자립형 사립고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한 동급생에게 폭언을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학교에서 전학 조치를 내렸는데도 재심 청구에 이어 소송까지 제기해 대법원까지 재판을 이어갔다. 소송 기간 가해 학생은 그대로 학교에 남아있었고 1년이 지나서야 전학이 이뤄졌다.

법적 대응으로 전학이 지연되면서 피해 학생은 공포심 속에서 1년 넘게 가해자와 계속 학교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피해 학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고통을 받았지만, 가해자는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은 더욱 커졌다.

이번 논란은 학폭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비교적 작은 처벌조차 예외 없이 학생부에 기록되기 때문에 가해자 부모 처지에서는 책임을 줄이려면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전가해 죄를 덜어야 한다. 학폭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가해자의 구제 기회는 필요하다. 모든 국민에게는 재판청구권이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다. 피해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졌는데도 소송 때문에 가해자와의 분리가 유예됐다. 소송 기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대책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 가해자에게도 선도의 기회는 줘야 하겠지만 피해 학생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 보완이 시급하다.

학폭 피해자들은 가해자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해 다시 상처받는 일이 흔하다. 사과보다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해 죄를 덜고, 변호사 등을 동원해 처분 수위를 낮추려는 가해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학교폭력 사건으로 꼽힌다. 이 사건으로 학생과 교사 13명이 숨지고 24명이 다쳤으며 가해 학생 2명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해 학생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는 사건 발생 17년 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통해 자녀 교육의 키워드로 '사랑'보다 '관심'을 내세웠다. 아이 얼굴 너머에 있는 것을 더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빛을 비추어 주고, 도움을 주라고 말한다.

많은 학부모가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한다. 자신의 자녀가 학폭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드물다.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도 있는 법이다.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폭의 피해자가 되길 원하는 부모는 없다.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에 학폭 근절 대책을 지시했다. 학폭에 따른 중대 제재를 정시 등 대입 전형에 반영하고, 행정소송 등 학폭 처분을 무력화하려는 가해자의 시도를 막고, 피해 학생 보호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새 학년이 곧 시작된다. 학폭으로 등교가 두려운 학생들은 없어야 한다. 폭력만이 아니라 언어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학교에 가해 학생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학부모도 함께 힘써야 한다. 학폭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 학교의 역할과 함께 부모의 관심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