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기울어진 뇌(腦) 운동장

입력 2023-02-24 11:19:07 수정 2023-02-24 18:54:25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거리 반대쪽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친한 사람을 보았다. 당신은 너무 반가워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는 당신에게 화답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가 버렸다. 당신의 감정은? 대개 부정적인 감정이 들 것이다. 예를 들면, 그가 당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사고를 당해 청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오히려 미안하고 적어도 화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상황은 정신의학적으로는 중립 사건(neutral event)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은 중립적이거나 애매한 사건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정신의학적으로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한다.

원시시대 인류의 이야기로 거슬러 가 보자. 밀림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 그때 저 멀리 숲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부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놀고 있었고, 또 한 부류는 맹수가 다가오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미리 피신을 했다. 어떤 인류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맹수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미리 피신했던 인류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우리는 생존한 자의 후예이다. 중립적이거나 애매한 사건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은 원시시대 직접적 위험에 많이 노출된 환경에서 생명을 지켜 내고자 한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뇌(腦) 기제이다. 인간의 뇌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변연계 특히 편도체가 일단 이를 위험 인자로 느끼게 해서 피하도록 해 준다. 다시 말해 생존을 위해 일단 부정적으로 반응하도록 진화되어 왔고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뇌에 집단 무의식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사실, 숲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맹수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바람 소리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동물이 지나가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렇다. 많은 경우 위험 상황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대에는 원시시대와 같이 맹수가 나타나서 목숨을 잃는 위험 요소는 사실상 거의 없다.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사건도 인생에서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인간의 뇌가 진화하는 속도는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에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히 우리의 뇌는 부정성 편향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에 아로새겨져 있는 부정성 편향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것인가?

먼저, 우리의 부정적 사고와 감정들은 우리의 기울어진 뇌 운동장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부정적 사고·감정은 병리적인 반응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서 유래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점을, 또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기울어진 뇌 운동장에서 자신, 타인, 세상,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므로, 이 기울어진 경사값을 제거하고 바라보아야 사실에 근접할 수 있다.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의 과부하에 있는 현대인들은 과거에 대한 부정적 해석으로 인한 우울감, 미래에 대한 부정적 해석으로 인한 불안감이 흔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울감과 불안감의 대부분은 우리가 두려워할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 있는 또한 지나가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결코 우울감과 불안감이 당신의 정체성일 수 없다.

기울어진 뇌 운동장의 경사값을 제거한 새로운 해석,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창조적 동기와 희망,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