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洪시장의 결단력, 대구지하철참사에도 발휘되길

입력 2023-02-21 14:10:33 수정 2023-02-21 18:50:09

채원영 사회부 기자

채원영 사회부 기자
채원영 사회부 기자

지난 18일 대구지하철 참사가 20주기를 맞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에도 참사와 관련된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유족과 상인이 나란히 대구시를 향해 "책임지라"며 비판하는 모습이 참사의 현재를 보여 준다.

참사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는다. 죽음을 수습하는 일이 매끄러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면 합의 논란 등 지난 20년간 지하철 참사에 대한 대구시의 대처는 갈등을 키우기만 할 뿐이었다. 추모식 당시 유족들은 "대구시가 약속한 추모 사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시를 비판했고, 팔공산 동화지구 상가번영회는 "시가 약속한 관광 활성화 없이는 추모 사업도 없다"며 맞불을 놨다.

유족의 요구는 간단하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명칭에 '2·18 추모공원'을 병기하고, 안전 상징 조형물을 '추모탑'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처럼 모든 것은 이름을 가짐으로써 완성된다. 대형 참사를 사회가 함께 기억할 공간을 갖고 싶다는 유족의 바람은 호명(呼名)으로 완결된다.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도 2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됐지만 아직 '대구지하철 참사'나 '2·18'이라는 명칭을 추모 공간과 추모탑, 공식 행사명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참사를 지워 내는 추모 사업이 아니라 우리 삶 곁에 두고 꺼내 볼 수 있는 추모 사업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취임 이후 여러 지역 현안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면 반발을 감수하고 일을 진행했다. 이러한 일 처리 방식은 여러 불만을 낳기도 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효과는 분명하다.

홍 시장은 지난 20일 시청 산격청사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 "정당한 유족의 정당한 요구는 언제든지 수용할 뜻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사 부상자 의료 지원을 5년 연장하기로 했다. 20주기 추모식을 향해서는 "정쟁 도구가 될 우려가 있다"며 불참했지만, 이틀 앞선 16일 따로 시민안전테마파크를 찾아 지하철 참사 당시 불에 탄 전동차를 바라봤다. 이어 안전 상징 조형물 주변을 바라본 뒤 현장을 떠났다.

지하철 참사를 제대로 '호명'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홍 시장의 몫이다. 그러나 만약 옳다고 판단한다면 기존의 시설을 추모공원, 추모탑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장 결단으로 추진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해 2월 대구시와 상가번영회가 체결한 '기브 앤 테이크식 협약'은 홍 시장 체제에서 추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당시 협약의 주된 내용은 ▷관광 트램 설치 시 추모식 허용 ▷'단풍 백리길' 조성 시 조형물 명칭을 추모탑으로 변경 ▷동화지구 도시재생사업 추진 시 테마파크와 2·18 추모공원 명칭 병기 등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런 식의 협약은 옳지 않을뿐더러 현재 시정 방향과 맞지 않다"고 분명히 했다.

20주기, 이제는 대구시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지하철 참사의 상처를 아물게 해야 할 때다. "대구지하철 참사 사건은 대구의 아픈 기억이지만, 우리는 그 기억을 잊지 않고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홍 시장의 말이 호명으로 실현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