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대퇴사(大退社)시대: 그들은 왜 떠나나

입력 2023-02-20 19:59:22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회장님' 대신 'JY'로 불러주세요." JY는 이재용 회장 이름의 이니셜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 직원 간에만 적용했던 '수평 호칭'의 범위를 경영진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경영진끼리도 수평 호칭을 쓰고, 회장 주재 간담회, 임원 회의 등에서도 수평 호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권위적인 수직 조직에서 수평적인 조직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이탈을 막고, 그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결정이다.

대기업들이 MZ세대 붙잡기에 지극정성이다. 이재용 회장은 물론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격식 파괴' 소통에 나섰다. 행정조직, 공기업도 조직 유연화에 공을 들인다. MZ세대가 조직문화 개선의 진원지이다. 이들은 기존 조직문화에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근무시간 ▷상사에 대한 예의 ▷회식 문화 ▷업무처리 절차 등을 놓고 삐걱거릴 때가 많다. 상사가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게 왜 지적 대상인지 이해 못 한다.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할 정도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처럼.

MZ세대는 안정적인 직장을 중시하던 과거 세대와 다르다. 노동의 가치, 자기 계발, 워라밸, 복지 등이 우선이다. 수틀리면 조기 퇴사도 서슴지 않는다. 대기업 연구원이던 지인의 딸은 입사 3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비합리적인 조직문화가 싫었고, '일하는 재미'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아버지는 참으라고 했고, 딸은 참지 않았다. 딸은 지금 카페에서 일하며, '요가 강사'를 준비하고 있다. 친구의 아들은 중등교사 임용 6개월 만에 퇴직했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했단다. 친구는 아들이 취직했다고 술을 샀고, 아들이 그만뒀다고 술을 샀다. "힘들게 교사가 됐는데, 왜 때려치우는지 모르겠다. 3년만 다녀 보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딱히 해 줄 말이 없어 술잔만 채워줬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대퇴사'(大退社)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퇴사는 미국에서 2021년 초를 기점으로 노동자가 대거 자진 퇴사하는 추세를 말한다. 이유는 복잡하다. 임금 정체, 장기간의 직무 불만족, 코로나19 팬데믹 등이다. 2021년 미국 텍사스 A&M대 경영대학원 교수 앤서니 클로츠가 지속적인 대량 이탈을 예상하며 '대퇴사'란 용어를 만들었다.

지난해 국내 한 취업 플랫폼이 기업 1천여 곳을 대상으로 '1년 이내 조기 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84.7%가 조기 퇴사 직원이 있다고 답했다. 전년도 조사 결과(74.6%)보다 10.1%포인트 증가했다. 전체 신규 입사자 대비 조기 퇴사자 비율은 평균 28.7%. 조기 퇴사자들은 평균 5.2개월 근무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기 퇴사에 대한 기성세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철없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여긴다. 애써 키운 인재가 휭하니 떠나 버리니 그럴 만도 하다.

대퇴사는 한때의 유행이나, MZ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세대를 품기에는 기존 조직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출간된 '조용한 퇴사'의 저자 이호건 박사(경영학)의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MZ세대와 관계를 지속하는 일은 어쩌면 힘들고 피곤한 일일 수도 있다. 오늘날 경영자나 리더에게는 조직과 개인의 관계 설정에 있어 새로운 사랑 방정식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과거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