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통화가 두려워

입력 2023-02-15 20:18:21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중학생 시절, 구청에 전화를 걸어서 문의할 일이 있었다. 모르는 어른에게, 그것도 행정기관 직원과 통화한다는 게 '까까머리'에겐 부담스러웠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상대가 질문하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종이에 시나리오를 썼다. 몇 번 연습을 거쳐 전화를 걸었다. 메모지를 보면서 통화를 했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사무적인 통화'는 무사히 끝났다. 그날의 긴장과 불안은 일종의 '콜포비아'(callphobia·통화공포증)였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에서 '콜포비아'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전화 통화엔 불편·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객관적인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구인구직업체 알바천국이 지난해 9월 콜포비아와 관련해 MZ세대 2천7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9.9%가 '콜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선호하는 소통 방식'으로는 61.4%가 문자나 SNS와 같은 텍스트를 꼽았다. 전화 소통(18.1%)은 대면 소통(18.5%)보다도 선호도가 낮았다.

콜포비아 극복을 도와주는 개인 과외도 등장했다. 전문가와 수강생을 연결해 전화 스피치 강의를 하는 온라인 플랫폼도 있다. 이용자의 대부분은 신입 사원들이라고 한다. 일부 기업들은 전화 통화에 익숙하지 않은 '코로나 세대'를 위해 사내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콜포비아는 젊은 층에서 많이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한다. 팬데믹 기간에 입학한 대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교수와 동기들과 얼굴을 보면서 교류하고 대화한 경험이 거의 없다. 입사 2, 3년 차의 상당수 직장인들도 재택근무로 동료들과 의사소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콜포비아가 청년층의 '소통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의견도 있다. SNS 소통이 일상인 그들에겐 전화 통화의 불편은 당연할 수 있다. 어르신들이 디지털 기기 이용을 어려워하듯이. 아무튼 전화 통화는 청년들에겐 '스펙 쌓기'의 범주에 진입했다. 청년들이여! 주저하지 말고 걸고 받아라. 그러면 말하게 되고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