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in 대구] 이영철 작가 "그림은 치유의 과정, 주변에 행복 전하고파"

입력 2023-02-07 09:44:03 수정 2023-02-07 17:39:24

혜민 스님 책 표지·삽화 그려내…아버지, 형과 이른 이별의 슬픔
슬픔 위에 아름답게 핀 들꽃과 나무들 그려내
“그림으로 치유…모든 것이 처음 출발할 때의 순수한 마음 잊지 않았으면”

이영철 작가가 직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이영철 작가가 직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업실
자신의 작업실 '인동헌' 입구에 선 이영철 작가. 작업실이 자리한 구미 인동(仁同)과 관련이 있나 싶다가, 한자가 다름을 알아챘다. 하루의 시작을 뜻하는, 해가 뜨는 동쪽의 의미를 담고 있어 봄과 아침, 동심 등 첫 출발의 순수함을 담는 작업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이연정 기자

한 사람의 공간에는 그의 취향과 생활 패턴, 가치관 등이 묻어난다. 그 공간이 화가의 작업실일 경우 더욱 특별하다. 화가의 치열한 고민과 수행에 가까운 반복적인 행위, 켜켜이 쌓인 철학, 작업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

깔끔하고 화려한 전시장이 아닌 작업실에서의 작가들은 어떤 모습일까.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아뜰리에를 찾아, 그들의 삶과 작품 이면의 얘기를 들어본다.

구미 인동50길. 아파트 단지와 농경지의 경계 즈음, 한적한 곳에 '카페미술관' 간판이 반겨준다. 카페 바로 옆에 캔버스와 드로잉 작품, 물감, 붓 등으로 가득한 500㎡ 규모의 공간. 혜민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표지와 삽화를 그린 봄산 이영철 작가의 작품이 탄생하는 곳이다.

그는 "아침 8시쯤 이곳에 와서 운동 겸 개 산책을 하고, 온종일 작업한다. 빨리 들어가봐야 밤 11시다. 집과 걸어서 5분 거리다보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작업실에 계속 머무른다. 이곳이 내게 가장 편한 장소"라고 말했다.

- 최근 갤러리 토마에서의 전시를 마무리했다. 세상에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이 매번 설레지만 부담스럽고, 뿌듯하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 올해 첫 전시를 마친 소감은.

▶보통 연말, 연초되면 마음이 어수선하고 생각도 많아지지 않나. 그런데 전시를 1월에 하니, 준비하는 데 바빠 해가 바뀌는 것도 모르고 지나갔다. 사실 연말이나 연초나 모든 날은 똑같은데, 어떤 마음을 갖는지는 나에게 달린 것이다. 바빠서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는 게 좋았다.

또한 이번 전시는 한겨울에 봄 기운이 가득한 작품을 내건, 1월에 한두송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매화같은 전시였다. 밖은 추웠지만, 따뜻한 공간에서 봄을 그린 그림을 보니 나도 좋았고 관객들도 좋아했다. 봄을 당겨쓰는 느낌이었다.

- 작업실 '인동헌'에는 언제 자리를 잡았는지.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지 4년째다. 여기 오기 전에는 창원 부곡문화예술촌 레지던시에 5년간 있었고, 그 전에는 대구 남문시장 근처 작업실에 머물렀다. 남문시장 작업실 당시에도 봄을 그렸지만, 도심 속 갇혀있는 공간이다보니 봄을 보기 쉽지 않았다. 어릴적 기억만을 바탕으로 상상해 그렸는데, 그림이 패턴화되는 느낌이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부곡문화예술촌 촌장으로 가게됐다. 그곳은 창문을 열면 숲이 있었다. 자연을 직접 보며 생명력을 느꼈다. 자연을 벗하고 그림을 그리니 더 생생해졌다. 부곡문화예술촌을 떠나 고향인 김천에 갈까하던 차에, 구미에 살던 친구와 만나게 됐다. 친구가 연 카페 옆에 작업실을 마련하게 됐다.

작업실 공간은 별다를 게 없다. 평생 모은 미술 관련 서적이 가득한 서재와 작업실, 야외 작업공간도 있다. 서재는 카페 손님들도 들러서 볼 수 있다. 작업실 앞 정원에는 항상 길냥이들이 머무른다.

봄산 이영철 화가의 작업실 문 앞에 달린 명패. 이연정 기자
봄산 이영철 화가의 작업실 문 앞에 달린 명패. 이연정 기자
봄산 이영철 화가의 작업실 모습. 이연정 기자
봄산 이영철 화가의 작업실 모습. 이연정 기자

- 그림에서 어릴적 뛰놀던 뒷산의 풍경이 생각나기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설렘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림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나.

▶봄, 아침, 동심, 첫사랑 등 세상에 온 생명의 근원이 첫 출발하는 시기의 순수한 모습이 그림에 담고싶어하는 지점이다.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릴 때 만나는 친구들은 계산적이지 않다. 첫사랑은 아껴주고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면 그러한 마음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처음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자는 것이다.

- 좀 더 들여다보면 나무와 들꽃, 호랑이, 달과 같은 자연물들이 소재가 된다.

▶들에 무수히 핀 꽃들은 결국 사람이다. 다 똑같아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그 무더기 속 어느 꽃과 꽃이 인연이 되면, 연인의 모습으로 작품에 표현되는 것이다.

달은 마음의 원형이다. 우리는 원래 둥글고 환한 존재임을 잊지말고 용기를 냈으면 한다. 또한 달은 태양이라는 존재가 있어야 보여진다. 좋은 일이 많을 때도, 나의 힘으로만 내가 빛난 것이 아니니 겸손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어느 한쪽에 마음이 치우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또한 호랑이는 동심이다. 누구든 마음 속에 호기심 많은 호랑이 한마리가 있다. 일부러 호랑이의 눈은 사람처럼 표현해서 감정을 전달한다.

- 그림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지향점은.

▶결국 환경, 생태에 관심이 닿아있다. 불과 40~50년 만에 내가 어릴적 뛰놀던, 보던 세상과 많이 달라졌다. 내가 아이에게 물려줄 세상이 많이 망가져서 안타깝다. 그래서 내 어릴적 기억을 그림으로 많이 남겨두고 싶다.

운이 좋은 게, 만약 도시에서 태어나 공장 근처에 살았다면 그런 기억이 없었을테다. 중3때 처음 전기가 들어올만큼 깡시골에서 자랐다. 그땐 너무 가난이 불편했는데, 세월이 지나고보니 그때만큼 아름다운 시절이 없는 것 같다. 한없이 퍼올릴 수 있는 얘기들이 그곳에 다 있었다. 어릴적 시골에서 본 달이며 산이 다 그림의 소재가 됐다.

이영철 작.
이영철 작.

- 밝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은 그림들이다. 실제 삶도 그랬나.

▶아버지와 형이 일찍 돌아가셔서, 누구나 다 겪을 일을 좀 일찍 겪었다. 그 때는 나만 힘든 줄 알아서, 그림도 비관적이고 어두웠다.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니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이더라.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밝고 예쁜 그림들을 그리게 됐다.

세상이 공평한 것 같다. 꽃의 아름다움 아래에는 서로 영역을 차지하려 사투를 벌이는 뿌리들이 있고, 봄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모진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내 인생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함께 있었다. 지금 그림 역시 바탕에는 이별과 슬픔이 가라앉아있고, 그 위에 꽃이 핀 셈이다.

- 그러한 슬픔을 정화하고, 순수한 풍경으로 치유하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을텐데.

▶들꽃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가 있다. 아버지와 형이 돌아가신 뒤 가장의 역할을 해오다가, 어머니까지 돌아가셨다. 괴로움이 너무 커서 나에게 벌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괴로움을 잊고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벌이 캔버스 가득 개망초 500송이를 그리는 것이었다. 개망초는 어디에나 피어있는, 계란프라이를 닮은 꽃이다. 꽃잎이 보통 세세한 게 아니다.

처음 한두송이를 그릴 땐 오히려 생각이 더 나고 그리움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화실 바닥에 누워서 울다가, 또 그리곤 했다. 100송이가 넘어가니 슬슬 몸이 아팠다. 옳거니, 싶었다. 몸의 고통이 반가웠다. 오른쪽 손과 팔은 계속 붓을 쥐고 그려서, 왼쪽 어깨는 너무 근육을 쓰지 않아서 아팠다.

그러다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지점이 왔다. 그냥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500송이를 넘어 몇만송이를 빽빽하게 캔버스에 채울 때까지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림이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체험하게 됐다. 그 그림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렸고, 혜민스님이 보게 된 이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표지가 됐다. 어머니가 이어주신 게 아닌가싶다.

이영철 작가가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이영철 작가가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 두 권의 미학에세이집을 펴냈고 지금도 시를 쓴다. 어릴적부터 글에 대한 열망이 있었나.

▶어린 시절 글짓기 대회에서 항상 장원을 차지했다. 환상처럼, 상상하는 것들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그걸 글로 옮겼던 거다. 하지만 내가 겪은 것이 아니니 항상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놨더니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거짓말은 해도 된다"고 하셨다. 현명하신 말씀이었다. 소설가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갈망으로 국립안동대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다. 지금도 작업 전 항상 글을 먼저 쓴다. 그 글이 그림의 밑바탕이 된다. 항상 순간의 감정이나 얘기를 메모하고 쓰는 습관이 있다.

- 앞으로 어떤 작업활동 이어갈 예정인지.

▶앞으로 활동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섬세한 작업을 대규모로 펼치는, 노동집약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싶다. 한편으로는 한 화면에 담긴 수많은 얘기들을 줄이고, 진짜 하고싶은 주제만 선명하게 전하는 작업을 해보려 한다.

내가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고, 그로 인해 주변인들에게 행복이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관람객들이 잠깐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진통제 같은 행복보다 근본적으로 자신 안의 약을 발견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가 그림으로 치유해본 경험이 있으니 그 효과를 가장 잘 안다.

이영철 작가의 작업실 모습. 이연정 기자
이영철 작가의 작업실 모습. 이연정 기자

인터뷰하는 동안 이따금씩 작업실 곳곳에서 쉬고 있던 개들이 짖었다. 부곡문화예술촌에 머물던 당시 가족이 된 개들이다.

이 작가는 "부곡문화예술촌 인근이 온천 여행지인데, 거기까지 와서 개를 유기하고 간다. 마음이 아픈 게, 버림받은 것도 모르고 주인 차와 비슷한 차만 봐도 달려간다. 로드킬 당하거나 다친 애들을 동물병원 데려가고, 또 치료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작업실에 개들과 함께 살게됐다"고 말했다. 생명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그의 순수함이 미소에 배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