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대구에 문풍(文風)이 분다

입력 2023-01-31 14:03:28 수정 2023-01-31 15:23:00

배주현 기자

배주현 기자
배주현 기자

3년 전의 일이다. 수습기자로 현장을 누비던 시절, 대구 북구에 '이태원 거리'가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이태원? 자연스럽게 서울 이태원이 먼저 떠올랐다. 대구에 웬 이태원인가 싶었더니 이태원은 다름 아닌 소설가 이름이었다. 장편소설 '객사'를 쓴 이태원 소설가의 이름을 딴 거리. 이태원 선생은 대구 출신이었고 인근에 생가가 있으면서 북구문화재단은 이태원 문학관을 세우고 이와 연계한 '이태원 거리'를 만든 셈이다.

'책'이라 함은 우리 삶에 가깝게 보이지만 '문학'이라 함은 뭔가 한 발짝 거리감이 느껴진다. 수능세대라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문학은 괜스레 어려워 보이고 고리타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수능 언어영역 지문에서만 접했을 법한 이태원 소설가를 '이태원 거리'를 통해 알게 됐을 땐 조금은 다른 친근감이 느껴졌다.

대구에 문풍(文風)이 분다. 문학관이나 문화 기념관 건립 움직임이다. 올해 대구에 문을 여는 곳만 해도 이육사 기념관, 한국전선 문화관, 수성구 정호승 문학관 등 줄을 잇는다.

잇따른 개관 소식에 문화계의 반응은 뜨겁다. 시민과 문학, 역사 등 '문화'가 시민들의 삶에 좀 더 밀접해질 수 있다는 이유다. 한 문화계 인사는 "비교적 관심이 적은 문학관이나 역사관들이 지역에 많이 생겨 지역 문인들이 많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태원 거리를 통해 문학에 대한 친근감을 느꼈듯 모쪼록 우리의 생활 터전에 문화 기념관이 많아질수록 '문화'라는 분야의 진입 장벽은 낮아진다. 자주 보면 정이 든다.

문제는 문풍이 잘 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문화 기념관이 잘 지어야 한다는 건데,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만만찮다. 특히 정호승 문학관, 이육사 기념관 등 특정 인물을 위한 공간 건립이 예고되면서 콘텐츠 구성에 한계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개인 문학관이 돼버리면 스토리나 콘텐츠가 한정될 수밖에 없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위상은 사라져 버린다는 지적이다.

이태원 거리에 있는 이태원 문학관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난 2020년 문학관 개관 이후 관람객이 2021년 8천357명까지 이르렀으나, 지난해 7천903명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영향도 있겠지만 일부 시민은 "콘텐츠가 한정적이어 계속 문학관을 찾을 만한 요소는 딱히 없다"고 토로했다.

작가나 문화 인물에 대해 나누어진 계파도 문풍이 시원하게 불 수 없는 이유로 꼽힌다. 특정 유명한 작가에 대해서 계파가 3, 4개로 나뉜 경우가 많으면서 동일 인물을 대상으로 소규모 문학관 등이 여기저기 생기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기념 공간마다 특색 없이 콘텐츠 등이 비슷하면서 시민들은 자연스레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문풍이 순풍이 될까. 지역 문화계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한 바람길을 터주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문화 공간 조성 당시부터 전문가와 시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이 있으면 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답변에 의아해하자 이들은 대개 문학관이나 문화 기념 공간이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른 치적사업의 하나로 추진되다 보니 형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만 거치는 게 '민낯'이라고 넌지시 토로했다.

앞으로 대구경북엔 문풍이 더 세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 삼국유사 등의 역사를 가진 군위군이 대구로 편입하면서 문학 또는 문화 관련 기념관의 확대는 자연스레 이뤄지겠다. 분명 좋은 변화이겠지만 하나를 짓더라도 제대로 짓자. 시민들은 어떤 문화 공간을 원하는지, 공간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어때야 하는지 깊은 고민이 담긴 공간이라면 문화 도시 대구로의 품격은 한층 높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