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고아원서 집단 폭행, 공장에선 손가락 절단… 남은 건 극심한 고독뿐

입력 2023-01-31 06:30:00

숙모 폭력·구박 못 이겨 9살에 가출… 이후 고아원에서도 괴롭힘 당해
희망 안고 대구 왔으나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 부상, 공장 사고로 손가락 잘려
기초수급자로 4평짜리 원룸에서 독거생활, 제대로 씻지도 못할 정도로 '열악'

지난 27일 박무일(가명·56) 씨가 외부 통로 겸 주방에서 손을 씻으려 하고 있다. 무일 씨는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오른손 검지 두 마디를 잃었다. 윤정훈 기자
지난 27일 박무일(가명·56) 씨가 외부 통로 겸 주방에서 손을 씻으려 하고 있다. 무일 씨는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오른손 검지 두 마디를 잃었다. 윤정훈 기자

기차의 속력이 차츰 느려지며 희망의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단출한 상하의 차림의 한 앳된 청년이 기차에서 내린다. '대구직할시'에 내디딘 첫발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인파에 휩쓸리고 마는 청년. 어찌어찌 역무원에게 표 검사를 받고 동대구역사를 빠져나온다. 이제 그는 광장 한복판에 서서 역사 주변을 빙 둘러본다. 허허벌판에 흙 언덕만 보이고, 건물이라곤 고속터미널과 '내고향식당', '나그네' 등 간판을 내건 한정식집 몇 개뿐이다.

그래도 사람은 많았다. 짐을 들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구두 닦는 사람들, 육교 위에서 번데기, 땅콩 따위의 주전부리를 파는 사람들, 동냥하는 사람들 등등. 그리고 사람들만큼이나 많았던 포니, 브리샤 택시들.

아무 연고 없이 무작정 도망쳐 온 거라도, 청년은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산과 구릉의 수호를 받는 이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모든 게 괜찮을 거라는, 근거 없는 안도감마저 밀려왔다.

"일단 일부터 구해야겠다."

희망에 찬 청년, 그 시절 박무일(가명·56) 씨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두고 온 줄만 알았던 불행이 아득바득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따라왔음을. 폭력의 긴 터널을 지나 당도한 이 도시에도 사랑은 없었다는 걸.

◆부모 없이 삼촌 집에서 자라…숙모 폭력 피해 도망친 고아원에서도 폭행

기억이 있을 때부터 무일 씨는 경북 한 시골의 삼촌 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무일 씨가 3살 때 어떤 사고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에 대한 건 아예 듣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삼촌이 무일 씨를 데려와 키웠다고 한다. 당시 삼촌은 객지에서 일했던 터라 집에 한 달, 길게는 두 달에 한번 찾아왔다. 자연스레 숙모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원래도 쌀쌀맞았던 숙모는 사촌 동생들을 낳은 이후 본격적으로 무일 씨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삼촌이 발견 못 하도록 옷을 입으면 드러나지 않는 부위만 골라 때렸다. 견디기 힘든 날이면 무일 씨는 숙모를 피해 근처 빈 창고에서 며칠을 보냈다. 끼니는 시장에서 구걸로 해결했다.

그러다 9살에 완전히 집을 나온 무일 씨는, 거리를 방황하다 버스정류장 인근 고아원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좋았던 기억은, '각하의 선물'로 받은 과자를 먹던 순간이 전부였다. 무일 씨를 향한 폭력은 그곳에서도 계속됐다. 10대 후반의 선배들은 무일 씨에게 선생님들 돈을 훔쳐 담배나 과자를 사오게 시켰고, 심심하면 무일 씨를 고아원 마당 구석으로 끌고 가 구타했다. 어쩌다 선생님들이 이를 목격해도, 단지 "그러지 마라"고 한마디 던진 뒤 지나갈 뿐이었다.

괴롭힘은 성인이 된 선배들이 고아원을 나간 후에야 끝났다. 폭력은 멈췄으나 불행으로 가득한 고아원 자체에 신물이 난 무일 씨는 성인이 되기 전 고아원을 나왔다. 그리고 큰 도시, 대구로 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잇따른 사고로 다리 부상, 손가락 절단까지…지체장애로 한평생 홀로 살아

대구에 도착한 무일 씨는 당장 지낼 곳이 없었기에, 숙식이 해결되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 20대 중반에 한 안경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일을 시작한 초기엔 기술은 안 가르쳐주고 정직원들 담배 심부름 같은 잡무만 시켰다. 고아원 시절이 떠올라 괴로웠지만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1994년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담배를 사 들고 공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오토바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무일 씨를 향해 돌진했다. 큰 사고였다. 여러 차례 수술을 거쳐 오른쪽 다리에 철심 2개를 박아 넣었다. 이때부터 무일 씨는 다리를 절게 됐다 .

그럼에도 목숨을 부지한 게 어디냐며 희망을 잃지 않은 무일 씨였지만, 그에게 들러붙은 불행은 집요했다. 몇 년간 잔심부름 끝에 무일 씨는 안경테를 절단하는 '쁘레스' 작업에 투입됐다. 그토록 배우고 싶던, 제대로 된 기술이었다. 그 기술로 무일 씨의 오른손 검지 두 마디가 잘려 나갔다. 두 번째 큰 사고였다. 무일 씨는 지체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공장을 나온 무일 씨는 이때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다. 70만 원 남짓한 정부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삶의 시작이었다. 당시 무일 씨는 30대 초반, 창창한 나이였다. 쪽방을 전전하다 공장 지인의 집에 4년쯤 얹혀살았는데, 갑자기 월세를 16만원에서 28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나왔다.

현재 4평짜리 월세방에서 1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감옥 같은 이 공간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방 외부에 변기 하나만 있을 뿐, 욕실이 없어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 폭 1m도 안 되는 비좁은 외부 통로 겸 주방에서 물을 끓여 몸만 닦는 수준이고, 추운 겨울엔 이마저도 어렵다. 빨래를 할 곳도, 널 곳도 마땅찮아 달력 위에 빨랫감을 걸고 말릴 수밖에 없다. 걷는 게 점점 더 힘들어져 전동휠체어가 필요하지만, 휠체어 둘 공간이 없어 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가족도, 형제도, 친구도, 아무도 없이 욱여 넣은 살림살이로만 가득 찬 감옥. 그 속에서 무일 씨는 서서히 메말라 가고 있었다. 최근 뇌경색으로 기억력 저하까지 겪고 있는 무일 씨. 최악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욕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작은 희망을 가슴에 품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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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딸의 두 차례 골수 이식에도 백혈병으로 아내 떠나보낸 뒤 의료비 5천만원 빚 안고 혼자 아이 두 명 키워야 하는 장상현 씨에게 2,211만 원 전달

중학생 딸의 골수 이식에도 백혈병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뒤 의료비 5천만원의 빚을 안고 혼자 아이 두 명을 키워야 하는 장상현(매일신문 1월 10일 자 10면) 씨에게 2천211만1천337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중앙안과의원(김일경) 5만원 ▷박상순 5만원 ▷방순옥 4만원 ▷이서연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장수진 2만원 ▷김진만 1만원 ▷이유진 1만원 ▷허영재 1만원 ▷'온누리교회성도' 5만원 ▷'따스한햇살' 5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반강제 결혼한 전 남편에게 외도·가정폭력 시달리다 사기까지 당해 2억원 빚 생기고 원룸에서 쫓겨날 위기인 서신애 씨에게 2,681만 원 전달

반강제 결혼한 전 남편의 외도·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사기까지 당해 2억원의 빚을 떠안고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원룸에서까지 쫓겨날 위기에 처한 서신애(매일신문 1월 17일 자 10면) 씨에게 49개 단체, 191명의 독자가 2천681만7천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화문화장학재단 20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세원정공물산 100만원 ▷(주)태원전기 100만원 ▷대구공공관리시설공단 1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100만원 ▷빛명상본부 6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60만원 ▷스마트치과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주)태린(한정민) 45만원 ▷(재)대백선교문화재단 4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40만원 ▷(주)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삼성기공(장태종)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구미현대병원 25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20만원 ▷(주)삼이시스템 2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20만원 ▷(주)태광아이엔씨(박태진) 20만원 ▷김영준치과(김영준)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경주천마자동차전문 10만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봉산교회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대구화랑(김항회)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키네마섬유(이필남) 10만원 ▷베드로안경원 10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박장덕) 10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10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느티나무한약국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무지개슈퍼(김정숙) 5만원 ▷봉산교회(김명묵)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앙안과의원(김일경) 5만원 ▷㈜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국선도풍각수련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대원전설(전홍영) 2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김상태 도경희 각 100만원 ▷이정추 90만원 ▷김진숙 조현권 각 50만원 ▷박철기 조득환 각 40만원 ▷이신덕 30만원 ▷곽용 문심학 신금자 진민지 각 20만원 ▷김경아 김대화 김명자 김은숙 박용환 변대석 신광련 안희옥 여병민 이경자 전경희 전시형 정원수 조득환 최창규 한은희 허정원 각 10만원 ▷이서연 9만원 ▷김재용 7만원 ▷권규돈 이서현 각 6만원 ▷김경규 김경호 김순향 김호근 박원경 박진숙 서정오 서준교 유명식 윤선희 이종하 이창영 임채숙 장정희 전우식 진국성 최영철 최종호 하혜련 각 5만원 ▷박기영 박희숙 각 4만원 ▷라선희 3만3천원 ▷강민주 강종수 김서영 김점숙 김종균 김태욱 박승호 박종천 이경숙 이상준 이석우 이옥희 이창세 임경숙 정명진 조진우 최정원 최지원 최춘희 하경석 각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권미경 김다영 김상근 김성진 김은영 남영희 류휘열 박태용 박홍선 서숙영 신일성 신종욱 여환주 윤영선 이영철 이운대 이운호 이재민 이재열 이해수 정주현 조영식 조혜란 천정창 최경철 최선태 하흥수 각 2만원 ▷김갑용 1만5천원 ▷권령경 권오대 권오영 권오현 김경진 김덕우 김삼수 김윤희 김종식 김주현 김태천 김태휘 김희정 문민성 박건우 박경미 박미화 박상옥 박애선 박인배 박재석 박찬희 배상영 배시연 배정준 백진규 신광수 우순화 우철규 유귀녀 유명희 이상희 이서영 이아영 이원형 이준수 이준우 이진기 이태연 이현민 장문희 전상희 정경희 정서원 정혜원 지호열 한정화 홍정아 각 1만원 ▷이현주 7천원 ▷손희정 윤인주 이순덕 조철제 각 5천원▷이장윤 4천원 ▷권두영 3천원 ▷김기만 최연준 각 1천원

▷'서신애씨힘내요' '주님사랑' 각 20만원 ▷'김상태만촌동' '범물동김선우' '사랑나눔624' 각 10만원 ▷'김나현쌤' 7만원 ▷'김민규안다겸' '불자 정순화' '재원수진' '최한태최수진' 각 5만원▷'석희석주' 4만원 ▷'윤미' 3만원 ▷'류현수.류미리.신지' '이웃돕기성금' '해만진주이안' '후원' 각 2만원 ▷'김경희서율' '박영신(이웃사랑)' '잘쓰이길' '조희수힘내세요' '지현이동환이' '푸름초록' '힘내세요' 각 1만원 ▷'따스한햇살' '희망금' 각 5천원 ▷'김명숙도움' 3천원 ▷'지성이' '채영이' 각 2천원 ▷'적은돈이지만' 1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