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화 녹색당 대구시당 운영위원장
비온 뒤 죽순이 자라듯, 지금 대구에서 웃자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파트'다. 2008년 대규모 미분양이 해소된 후 10년 동안 아파트 가격 상승이 지속되자 신규 공급이 계속되었고 급기야 미분양 아파트는 약 1만1천700가구에 이르렀다. 이는 전국 미분양 아파트의 20%에 해당된다(2022년 11월 기준).
1960년대 이래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만성적 주택 부족에 대해 아파트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이후 2000년대 재건축과 재개발 붐이 일면서 아파트는 주거의 의미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광고 문구처럼 주인의 지위를 웅변해주는 '분신'으로, 고가의 고층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내는 랜드마크는 도시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징표'로 자리매김해왔다. 반면 오래된 주거지에 사는 주민들은 어느새 '낙후'의 이름표를 스스로 달고 아파트 개발을 염원하게 되었다.
아파트는 공급이 늘면 가격이 내려가고, 사용 연한이 쌓일수록 감가되는 원리도 거슬렀다. 좋은 입지에 자리잡은 고급 아파트 값은 결코 떨어지지 않을테니 누구나 빚을 지고서라도 구매할 것이라는 기대심리로 인해 아파트는 시장 법칙을 벗어난 상품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장 법칙은 작동하고 있었고 대규모 공급이 집중되자 가격은 갑자기 수요공급 곡선으로 회귀해 급락하고 있다.
시장은 종종 실패한다. 배춧값이 좋다고 농부들이 죄다 배추 농사를 지으면 배춧값이 폭락하고 결국 농부들이 배추밭을 갈아엎는다는 그런 실패의 이야기는 익숙하다. 그러나 아파트의 경우 비교가 안 될 심각한 문젯거리다. 아파트는 어딘가에 쟁여둘 수도, 땅에 묻어 다른 집을 짓는 거름으로 쓸 수도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새 아파트 분양에 줄을 서는 사람들을 말릴 수 없고, 토지와 자금을 확보해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건설사를 막을 도리는 없는 것일까? 토지 용도나 주거지 등급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지만, 건축물의 건폐율과 용적률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제한한다. 층수 제한도 지방정부 소관이다. 그러니까 인구와 주택의 추이를 살펴 주택공급 속도를 조절하거나, 도시경관과 조망권, 건설과정의 온실가스 배출, 교통과 환경오염 부하를 근거로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주민들의 민원을 이유로 층수 제한을 풀고, 용적률와 건폐율도 후하게 책정하며, 임대아파트 제공과 일부 토지의 기부채납을 근거로 용적률과 건폐율 특례를 허용하여 고층 아파트 건설의 길을 열어주었다. 주택 거래가 늘어 지방세가 확충되면 더없이 좋을 일이고, 그게 아니어도 손해날 건 없으니 허가만 하고 두고 보는 식이다.
아파트 가격을 떠받치던 기대심리가 사라지면 집은 잘 팔리지 않는다. 집을 팔지 못한 사람들은 새 아파트를 살 수 없을 테니, 예쁘고 새것인 채로 텅 빈 아파트가 늘어날 것이다. 사람들에겐 경제적 손해이고, 지구적으론 엄청난 자원 낭비이며 되돌이키기 어려운 오염이다.
2023년 대구의 신규 아파트 물량은 3만 가구가 넘을 예정이다. 오늘도 대구 곳곳의 건설 현장엔 대형 크레인은 차곡차곡 한층씩 쌓아 올리고 있다. 왜 계속 짓는지 의문스럽지만 대답할 사람은 없는, 모두가 우려하지만 누구도 멈추지 못하는 무질서, 아노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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