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팔공산·앞산이 안 보인다

입력 2023-01-15 20:10:27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대구는 분지(盆地)다. 북으로는 팔공산, 남으로는 비슬산 등 1천m급 명산이 안락하게 대구를 보듬고 있다. 지형적 특성 덕분에 대구는 수마(水魔)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도시다. 큰 비는 팔공산·비슬산에 막혀 대구에서 부드러운 비(Gentle Rain)로 변한다. 팔공산, 비슬산, 앞산은 대구 시민의 벗이다. 대구 어디에서나 고개만 들면 산들이 반겨준다. 대구 사람들은 집집마다 백만 불짜리 조망권 호사를 누려 왔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산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도심 곳곳에 우뚝 선 아파트에 가려진 탓이다. 지금도 대구 도심 곳곳에서는 수십 층짜리 주상복합 공사가 한창이다. 오래된 주택가들도 대거 헐려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뀌고 있다. 초고층 아파트로 점령된 대구 도심에서 팔공산과 앞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이제 찾기가 어렵다.

20~30년 전만 해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대구 도시 외곽 신개발지에 들어서는 게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르면서 초고층 아파트들이 야금야금 도심을 파고들었다. 부동산 버블이 극에 달한 몇 년 전부터 대구의 도심은 거대한 공사판을 방불케 한다. 중·서·동·북구 옛 도심 도로를 지나다 보면 넘쳐나는 게 건설 현장 가림막이고 타워 크레인이다.

전국적 현상이긴 해도 대구의 아파트 과잉 공급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8~2021년 대구에서는 적정량의 4배가 넘는 10만여 가구 아파트가 공급됐다. 지난해 2만여 가구가 입주했으며 올해에는 이보다 74%가 늘어난 3만6천여 가구가 입주 대기 중이다. 전국 대도시 가운데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가장 많은 곳도 대구다.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 다섯 채 중 한 채가 대구에 있다.

일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꼴찌인 대구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가 공급되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대기업이 없어서 문제이지, 살 집이 없어서 대구 경제가 안 좋은 게 아니다. 그런데도 아파트 많이 지으면 경제가 살아나는 양 집을 지어댔다. 실거주 목적이 아니라 분양가 프리미엄 또는 시세 차익을 얻겠다는 욕심이 거기에 깔려 있었다.

거품은 꺼지기 마련이다. 학원가가 즐비한 '황금 학군' 수성구 지역의 전용 면적 85㎡짜리 한 아파트 가격이 2020년 최고점 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수성구 다른 한 아파트는 신저가·하락액·하락률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아파트 과잉 공급 후유증이 해결되기 위해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주택 가격이 지금보다 10~20% 더 내려가면 대구의 아파트 전세 가구 가운데 33.6%가 '깡통 전세'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전문가 예측도 있다.

아파트 과잉 공급은 또 다른 고민거리를 대구에 남긴다. 대구경북신공항, 군부대 통합 이전, 서대구역세권사업, 염색산단 이전 등 대구 현안 사업에 미칠 부정적 '나비 효과'다. 하나같이 기존 부지를 민간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들이다. 매각할 땅에다 일정 부분 아파트를 지어야 타산이 맞을 텐데 아파트 공급이 넘쳐 나는 대구는 땅이 지닌 매력도가 크게 떨어졌다.

결과를 놓고 보면 대구의 공직자들이 지역의 미래를 고려한 도시계획 개념을 가졌는지조차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곶감 빼먹듯 도심을 아파트에 내주도록 방기한 대구시와 각 구청의 근시안적 행정이 유감스럽다. 창문만 열면 반갑게 맞아주던 팔공산, 앞산, 비슬산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