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칼을 쳐서 보습으로, 창을 쳐서 낫을

입력 2023-01-10 16:44:01 수정 2023-01-11 16:04:05

김승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정치학 박사)

김승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정치학 박사)
김승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정치학 박사)

성탄절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 지난해 2월 24일이니 거의 1년이 다 돼 간다. 우크라이나는 정교회 신자가 다수라 매년 1월 7일을 성탄절로 기념하는데 전쟁 이후 처음으로 지난 주말에 성탄절을 맞았다. 각별한 의미가 있었겠으나 성탄절 이브인 지난 6일 오후에도 키이우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습경보가 울렸고 주요 발전시설과 도심 등에 포격 피해가 이어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선제공격을 해 대응사격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교회 성탄절을 기념하자며 러시아군에 내린 36시간 휴전 명령이 무색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사한 러시아 군인 부인들이 지난 4일 푸틴 대통령에게 대대적 동원령 발령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 미망인 단체는 또 징집 연령 남성들이 러시아를 떠나지 못하도록 국경을 폐쇄할 것도 요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이렇게 요구할 충분한 도덕적 권리가 있다" "우리 남편들은 다른 남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죽었지만, 그들이 도망가면 누가 우리를 보호할 것인가?"라고 외쳤다. 이들은 또 "2차 대전 당시 스탈린이 군에 내린 '후퇴 금지 명령'과 유사한 지시를 내릴 것도 요구한다"고 했다고 한다. 주장의 요점은 '자기 남편이 죽었으니 남의 남편도 죽으라고 하는 것'이고, '자신들의 죽음이 두려워 남의 남편들과 아들을 총알받이와 방패로 삼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전쟁미망인들의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인간 본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전쟁이 원래 그렇지만 밑바닥이 드러난 인간 본성을 보니 전쟁도 무섭지만 인간이 더 무섭다.

사실 놀랄 것도 없다. 인간은 원래 원죄를 가진 악한 존재다. 배가 고프면 자기 자식도 잡아먹는 것이 인간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성경(열왕기하 6장)에 나오는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이 에피소드는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망하고 타락해 가는 과정에서 사마리아에 먹을 것이 없자 인간들이 보여준 한 단면이다. 대체로 세상의 거의 모든 부모가 자식을 위해선 자기 목숨이라도 내 주지만 타락하고 악하면 이런 막장을 살아가는 것도 인간이다.

러시아 전쟁 미망인들도 자기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남의 남편과 자식들까지 죽도록 해야 할까? 그들이 두려움을 피하고 평안을 얻고자 한다면 전쟁을 그만두면 된다. 몇 뼘 안 되는 우크라이나 땅뙈기를 꼭 빼앗고 압제해야 하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때문에 벌써 1천조 원 이상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는데 전쟁을 오래 끌면 끌수록 러시아의 피해도 더 늘어난다. 이 전쟁에서 푸틴이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이긴 것이 아닐 것이다. 잃은 게 더 많을 것이다. 최근 러시아 내 반전 여론과 푸틴 정권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공포와 염증이 러시아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제대로 된 무장과 훈련 없이 전선에 투입되고 사망·부상자와 포로가 급증하면서 반정부 활동도 강화되고 있다. 마치 월남전에 질질 끌려갔던 당시 미국과 같은 상황이다. 머지않아 러시아의 국력과 영향력은 매우 약화되면서 시베리아 호랑이가 종이호랑이로 쪼그라들 수 있다. 벌써 러시아가 옛 소련 시절의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승계한 것은 불법이라면서 러시아를 모든 국제기구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피해에도 불구하고 국가 정체성 확립과 러시아의 예속에서 반드시 벗어나겠다는 국민적 단결을 공고히 하는 등의 큰 성과를 거뒀다. 설사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패배하더라도 그건 진 게 아닐 것이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다. 다시 힘을 키워 언젠가는 러시아 손아귀를 벗어나 친유럽 쪽으로 합세할 것이 자명하다. 이제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이성을 가진 존재로 돌아가자.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또 성경(이사야 2장, 미가 4장)도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