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공자학원

입력 2023-01-04 20:01:23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인간과 사회에 관한 이론이나 사상은 그것이 생겨난 시대와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다. 공자(孔子) 사상도 예외일 수 없다. 공자 사상은 인간 사회가 지속 가능하기 위한 인의도덕(仁義道德)의 영원한 가르침으로 일컬어지고 존숭(尊崇)받지만, 기본적으로 부모에 대한 자식의 존경(孝)과 연장자에 대한 연소자의 존경(悌)이라는 종족 공동체의 위계 질서를 왕(天子)에 대한 제후의 복종과 상층 관료에 대한 하급 관료의 복종에 유비(類比)시킨 서주(西周)의 계급 세습 사회 질서로 되돌아가자는 호소였다.

서주의 통치 질서는 농업생산력이 높아지면서 붕괴하기 시작했다. 부자가 된 평민-이를 소인(小人)이라고 했다-과 세력가들이 출현해 기존의 세습 귀족과 대결하면서 신분 질서는 요동쳤다. 주 왕실이 허수아비로 전락한 춘추시대 242년간 36명의 제후가 신하(귀족)들에게 살해되고 72개 제후국이 몰락했다.

이런 격변은 공자에게 '천하무도'(天下無道) 즉 이 세상에 더 이상 질서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해결 방법은 서주의 생래(生來)적 신분 질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공자가 가장 중요시한 것이 '예'(禮)였다. 공자에게 예는 단순히 미풍양속을 넘어 서주의 '지배 질서'였다. 공자 사상은 지독한 복고주의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대등한 인간 관계란 없다. 신분 질서가 요구하는 분수(分數)와 이를 따라야 하는 차별적 윤리가 있을 뿐이다.

중국이 세계 각국에 설립, 운영 중인 공자학원이 속속 퇴출되고 있다. 최근 2년간 전 세계에서 문 닫은 공자학원은 150개에 육박한다. 중국 공산당의 체제 선전 거점이란 결론에 따른 조치이다. 공자학원이 퇴출돼야 할 이유는 이것 말고도 있다. 바로 공자 사상의 봉건성(封建性)이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의 상도(常道)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핵심은 인간 관계를 상하존비(上下尊卑)로 구별해 차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자학원'이란 명칭부터 21세기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공자학원의 위상은 굳건하다. 아시아 국가를 통틀어 최다인 23개가 국내에 개설돼 있고 그중 22개가 전국의 국립 및 사립대학교 안에 있다. 소중화(小中華)를 자임한 조선의 미몽이 어른거린다면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