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과이불개, 국민은 왜 분노하지 않는가

입력 2023-01-03 20:13:23

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영특한 토끼의 특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검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한 해인 만큼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22년을 돌아보며 계묘년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전국 대학교수들은 2022년 한 해 한국 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과이불개'는 '논어'에 등장하는 말로 원문은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이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는 뜻이다.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는 "우리나라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이태원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려는 정치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라고 추천 이유를 말했다.

실제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뿐만 아니라 보수·진보 이념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정반합의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 과정이 사라지고 '일방적 주장'과 '남 탓'만 남았다.

필자는 '고치지 않는다'와 '분노하지 않는다'의 문제를 구분해서 보고자 한다. 고치지 않는다는 것은 정치집단에 대한 문제이고, 잘못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문제이다.

'과이불개'는 국민을 '대상'으로 놓았지만, 필자는 국민을 '주체'로 놓고 분석해 보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뿐만 아니라 입시 문제, 남녀 군복무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회적 문제에 대해 내로남불, 불공정 시비가 뜨거웠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공정성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뜨겁게 달아오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공정해졌는가?

디지털타임스가 의뢰해 한국갤럽이 2022년 12월 19~20일 조사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사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를 묻는 질문에 '공정'이라는 응답이 32.4%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어 평등(14.0%), 정의(13.6%), 법치(11.6%), 성장(10.1%), 자유(9.0%), 분배(5.7%) 등 순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국민들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공정'이라고 대답하면서도 공정이라는 가치 훼손에 대해 무심하고 무감각한 듯 보인다.

왜 불공정에 분노하지 않는가? 그 이유가 궁금하다.

필자가 얼마 전 수행한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그 이유에 대해 풀어 보고자 한다.

우선, 국민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보수 정권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민주진보 정권은 만만한 대상이다.

보수 정권에서는 무소불위로 휘둘러대는 검찰의 법날 앞에서 나한테 해가 될까 봐 지레 겁먹고 덤비지 못한다. 이들은 탄압하고 억누르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진보 정권하에서는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한껏 살아 오른다. 민주 정권은 관대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국민이 권력을 대하는 도덕성의 기준이 다르다.

똑같은 부정부패와 불공정에 대해 '수구보수 집단은 원래 저런 사람들'이라는 시각 속에서 관대해지고, '민주진보 진영은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해야 한다'는 시각 속에서 엄격해진다. 이중 잣대 때문에 지금의 불공정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듯 보이는 것이다.

셋째, 기울어진 언론 환경 때문이다.

저널리즘이 상실된 언론은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보도 내용을 자기검열하고 진실을 전달하지 못한다. 유튜브 등 1인 미디어가 발달했다고 하지만 진영 논리를 강화시키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대중적인 시각을 열어주는 데는 여전히 전통적인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마지막으로, 대다수 국민은 나에게 해가 되지 않으면 그럭저럭 자족하며 살아간다.

문재인 정권에서 가상화폐 규제, 부동산 규제 등으로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게 작용했다면, 윤석열 정권에서는 주가와 부동산 하락에 대해 과열된 거품이 조정되는 것이라고 보고 종부세 감세 등 혜택이 있다고 느낀다.

검찰권 남용 등 정권의 불공정 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눈감고 버틸 만한 것이다. 국민이 분노하지 않는 이유는 현상일 뿐이다. 현상과 본질을 구분해야 한다.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불만과 불신의 농도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의 힘이 결국 역사를 바꾼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2023년은 잘못을 바로잡는 지혜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