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이는 25주에 1kg도 안되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지금은 경직으로 조금 뒤뚱거리지만 혼자 걸을 수 있고 언어와 인지도 정상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하윤이는 10년 재활 치료의 종결을 앞두고 있었다.
환자를 오래 치료하다 보면 보호자와 함께 애를 키우는 느낌이다. 하윤이는 처음엔 씹지 못해서 코에 줄을 꽂아야 했고 계절에 한 번씩은 폐렴으로 입원했다. 하윤이는 걸음마를 병원에서 배웠고 말도 병원에서 배웠다. 숟가락질, 젓가락질도 수십 번, 수백 번의 치료 끝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른도 힘든 고되고 긴긴 치료를 하윤이는 잘 견뎠고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윤이의 학교생활은 순조로워 보였다. 학교 가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하윤이가 언젠가부터 말수가 줄고 학교에 안 가려고 한다고 했다. 엄마 말로는 친구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마가 찢어져서 왔는데 애들이 병신이라고 밀쳐서 넘어진 거였다고 했다. 최근에 생긴 다리의 상처도 알고 보니 애들이 불편한 왼발을 걸어 넘어뜨린 거였다. 하윤이는 점점 학교를 빠지고 병원에만 오려고 했다. 병원에서는 하윤이를 배려하니까 학교 친구들이 아닌 병원의 어른들에게 안정감을 얻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사건이 일단락되고 몇 달 뒤 어머님께 원래 계획대로 병원에서의 재활치료는 일단 종결하고 정기적인 외래 진료만 받는 걸 권했다. 하윤이 어머님은 불안해하셨다. 10년 동안 하던 치료를 그만두려니 기쁘기보다는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어머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나는 얘기했다. "어머님, 제가 하윤이를 치료하는 목적은 병원에서 100점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윤이가 하윤이의 사회에서 하윤이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거예요. 학교를 계속 빠지고 병원에 오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아요. 너무 불안해 마시고 일단은 학교생활에 좀 더 집중해 봅시다. 저도 도울게요"
하윤이는 일주일에 두 번 학교 수업을 일찍 마치고 병원에 왔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하교 후엔 치료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윤이 치료를 위한 일상이 친구들에겐 하윤이의 장애를 더 도드라지게 했던 것 같았다.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이후 하윤이에게 절친도 생겼고 어머님도 훨씬 편해지셨다.
물론 모든 환자들이 하윤이처럼 치료를 종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수많은 하윤이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얘들아. 너희가 놀이터에서 뛰어놀 때 하윤이는 병원에 와야 했단다. 너희가 학원에서 공부할 때 하윤이는 병원에서 주사 맞아야 했단다. 하윤이가 불편한 게 하윤이 잘못도 아닌데 하윤이는 힘든 치료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 왔단다. 하윤이도 너희랑 놀고 싶은데 꾹 참은 거란다. 그러니, '병신'이라고 밀치지 말아 줄래. 뒤뚱거린다고 발 걸지 말아 줄래. 수업 시간에 대답을 잘 못해도 '바보'라고 놀리지 말고 할 수 있다고 얘기해 줄래. 체육시간 달리기에서 꼴찌로 들어와도 힘내라고 응원해 줄래. 니가 내미는 손길 한 번이면 하윤이는 열 번 더 힘을 낼 거란다. 니가 하윤이에게 짓는 웃음 한 번이면 나는 백번 더 힘을 낼 거란다. 그러니, 얘들아, 부디 하윤이의 친구가 되어주렴.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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