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투병 향년 82세
역대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월드컵 최연소 득점·해트트릭 등 불멸의 기록
은퇴 후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긍정적 영향 퍼트려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가 대장암으로 투병하던 중 별세했다. 향년 82세.
AP통신, 로이터통신 등 현지매체들은 30일(한국시간) "월드컵에서 3차례나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펠레가 사망했다"며 "그의 에이전트가 사망을 확인해줬다"고 보도했다.
◆1년 넘는 투병 끝 '하늘의 별'로…
펠레가 치료를 받고 있던 브라질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은 "펠레가 현지시간으로 29일 오후 3시 27분 사망했다"며 "그가 앓고 있던 질병들과 대장암의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오른쪽 결장에 암 종양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은 펠레는 이후 화학치료를 받으며 병원을 오갔고, 지난달 심부전증과 전신 부종, 정신 착란 증상 등으로 재입원했다.
여기에 코로나19에 따른 호흡기 증상 치료까지 받으며 힘든 투병을 이어갔다. 브라질 현지 매체는 앞서 펠레가 증상 악화로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통증을 줄이는 완화치료로 전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펠레의 가족은 지난 4일 "코로나19로 호흡기 상태가 악화해 입원한 것으로 위독한 상황은 아니다"며 펠레의 건강 악화설을 부인했다. 병원 측도 "펠레는 의식이 있는 안정적인 상태로 새로운 합병증은 없다"고 발표했다.
이달 중순엔 펠레의 건강 상태가 호전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지난 12일 "(펠레의 담당) 의료진에 따르면 펠레의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축구 팬들은 한숨 돌렸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의료진은 지난 21일 갑작스럽게 성명을 내고 "펠레의 암이 더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심장, 신장 기능 장애와 관련해 더 많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결국 펠레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30일 눈을 감았다.
![[그래픽]](https://www.imaeil.com/photos/2022/12/30/2022123016183545835_l.jpg)
◆맨발의 소년, 세계정상 오르다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펠레는 1940년 10월 23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소도시인 트리스 코라송이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다. '펠레'는 애칭이었는데, 의미는 불분명하다. 펠레조차도 자서전에서 이름의 의미를 모른다고 했다.
펠레는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으나 축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 돈지뉴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축구 선수의 꿈을 품었다. 운동화 대신 맨발로 흙바닥 그라운드를 뛰었고, 공이 없어 양말을 뭉쳐 만든 공을 차면서 실력을 키웠다. 1955년 만 15세에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팀 산투스에 입단했고, 이듬해 37골을 넣어 데뷔 첫해 득점왕에 오르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펠레는 현역 생활 동안 1천363경기에 출전해 1천281골을 터트렸다고 알려졌지만, 이 기록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친선경기와 투어 경기 득점이 상당수 포함된 데다 오래된 기록들의 정확성이 떨어져 산투스, 뉴욕 코스모스, 브라질 대표팀에서 뛸 때 작성된 총 757골이 국제스포츠통계재단(RSSSF)이 인정하는 펠레의 공식전 총 득점이다.
브라질 축구 대표팀에서는 통산 A매치 92경기에서 77골을 넣었다.
펠레의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이다. 월드컵 최연소 득점·멀티골·해트트릭·우승 등 불멸의 기록이 이때 펠레에 의해 쓰였다.
당시 키 168㎝에 만 17세 소년이었던 펠레는 옛 소련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치르며 환상적인 드리블과 패스로 전 세계인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브라질이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이후 펠레는 1962년 칠레,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도 조국을 정상으로 이끌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우승컵을 세 차례나 들어 올린 선수가 됐다.
◆축구화 내려놓고도 왕성한 활동
펠레는 은퇴 후에도 축구해설가, 친선대사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 왔다.
그는 월드컵을 비롯한 큰 축구 경기가 열릴 때면 우승팀이나 승리팀을 예측하기도 했는데, 그 예측이 틀리는 경우가 주로 알려지며 '펠레의 저주'란 징크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브라질 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돼 최초의 흑인 장관으로 1995년부터 3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장관 재직 시 자유계약선수제 확대, 심판이익단체 결성 허용, 축구협회 승인이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프로리그 창설 등의 내용이 담긴 브라질축구 개혁법안, 이른바 '펠레법'을 마련해 브라질 축구의 개혁을 주도했다.
펠레는 올림픽에 출전한 적이 없음에도 199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뽑혔고,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축구인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인 고(故) 디에고 마라도나 등과 함께 함께 2000년 FIFA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선수'에도 뽑히는 등 발자취를 남겼다.
한편 브라질 정부는 펠레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이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브라질의 영웅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고 발표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