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윤 오브 뎀

입력 2022-12-28 20:48:17

이호준 서울취재본부장
이호준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과 출입기자들의 관계는 대체로 일방적이다. 취재도 그렇고, 공지나 전달도 마찬가지다. 실명 브리핑도 있고 관계자와의 질의응답도 있지만 원론·원칙적인 답변이나 동문서답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브리핑도 정해진 시간이 없다. 보통 20, 30분 전쯤 공지한다. 취재도 쉽지 않다. 제대로 된 답변을 듣기도 어렵고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하면 달리 방법이 없다. 돌아가면서 하겠다던 수석비서관들의 브리핑도 몇 번 안 하고는 말도 없이 중단됐다. 공지나 전달도 하달식 일방 통보가 대부분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은 그래서 더욱 획기적이었다. 수석비서관도 만나기 어려운 판에 대통령이 직접 매일같이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소통하는 건 파격적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지던 도어스테핑도 점점 달라졌다. 각종 구설과 정제되지 못한 발언 등으로 잡음이 일면서 먼저 모두 발언을 하고 질문 한두 개 받는 걸로 방식이 바뀌었다. 그 한두 개 질문도 가려 받다가 이마저도 MBC 취재진과의 마찰 후 전면 중단됐다. 도어스테핑 장소도 전면 구조물 설치로 완전히 단절됐다.

일방 기류는 도어스테핑 중단 후 더 강해졌다. 대면 브리핑은 줄고 서면 브리핑은 많아졌다. 대면 브리핑에서의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도 더 당당해졌다. 사전 알림도 없었던 행사 서면 브리핑이 오후 6시 전후에 갑자기 쏟아지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주는 것만 받아쓰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대신 대국민 기획 이벤트는 많아졌다. 이달 중순 이후에만 국정과제 점검회의(15일), 청년 간담회(20일), 비상경제민생회의(21일), 미래 과학자와의 대화(22일) 등 국민 직접 대면 행사가 잇따랐다.

국민 직접 대면 이벤트가 소통 창구로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효과 때문인지 우연인지 이 기간 중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올랐다. 내친김에 정부 부처 신년 업무보고도 독대 형식으로 했던 지난번과 달리 대규모 국민 보고 방식으로 바꿨다. 지난 21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의 경우 비상경제민생회의·국민경제자문회의를 겸해 공개적으로 열렸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2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업무보고도 해당 부처뿐 아니라 민간, 관련 기관 등 각각 150여 명이나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직접 대면 방식이 잘못됐다는 건 물론 아니다. 기자와의 쌍방 소통 방식에선 돌발 상황이나 실수가 나올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우려도 있다. 그래서 준비되고 정리된 이벤트를 통해 직접적이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이 또한 전략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소통 방식 중 하나다. 기자들과의 대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잡음 등 우려는 차단하고 보도·홍보 효과는 높일 수 있어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이라 할 수도 있다.

다만,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준다면 애초 윤 대통령이 원하고 지향했던 '윤석열식' 소통은 아니다. 소통이 단절된 '구중궁궐'(九重宮闕) 청와대가 싫어서 거센 반대에도 대통령실까지 과감히 이전한 윤 대통령이다. 힘든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소통을 강조하며 '소통'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 윤 대통령이 취임 첫해가 가기도 전에 '원 오브 뎀'(One of Them), 역대 여러 대통령 중 소통에 있어 그냥 한 명의 '보통'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