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영의 풍수이야기] 〈6〉대구 달성군 삼산리 금곡(金谷)

입력 2022-12-14 14:08:33 수정 2022-12-14 20:09:21

대성산업 성공 신화, 상·중·하 3자리 선영 상승작용
창업주 고 김수근 회장 선영…수탉 양 옆으로 매·개 형상
氣 최고 삼수부동격 대명당

금곡계곡 안쪽에서 본 전경.마을이 동서남 3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산봉우리 3개가 마을 가까이 솟아 있어 삼산동(三山洞)이라 했다.
금곡계곡 안쪽에서 본 전경.마을이 동서남 3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산봉우리 3개가 마을 가까이 솟아 있어 삼산동(三山洞)이라 했다.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는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 때 녹문동(鹿門洞)과 금동(金洞)을 병합하면서 마을이 동서남 3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산봉우리 3개가 마을 가까이 솟아 있어 삼산동(三山洞)이라 했다.

이곳 삼산리의 옛 지명 금곡(금동)의 지명유래를 보면 '산이 헐벗고 흙과 모래가 쌓이면서 앙상한 산이 되었고 그리하여 쇠점(釗點)이라 불리어지게 되었다'라고 하나 산세의 형상을 보면 금계(金鷄)와 관련된 지명으로 보인다.

대성산업 창업주 고(故) 김수근 회장 증조부 선영
대성산업 창업주 고(故) 김수근 회장 증조부 선영

◆대성산업 창업주 고(故) 김수근 회장 선영

금곡은 대구 시내에서 가깝고 산세가 수려하여 전원주택이 골골이 들어서 있다. 이 골짜기 안쪽에는 대성산업 창업주 고(故) 해강(海崗) 김수근(金壽根) 회장 선영이 있다. 사업가 김수근은 1916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그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소년 가장으로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다. 어려운 형편에 무리하게 고학을 하다가 건강을 해쳐 대구상업학교(현:상원고)를 휴학한다.

장작 대신 연탄을 땔감으로 쓰게 되었던 시절, 그는 한 연탄공장에 입사하면서 그 당시 서민들의 주 연료인 연탄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후 수년간 금융조합 일을 하다가 1947년 대구 칠성동에서 직원 5명에 165㎡(약 50평) 규모의 연탄회사인 '대성산업공사'를 설립한다. 이렇게 시작한 조그마한 연탄회사가 수많은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에너지 전문 대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 근원을 풍수학적으로 풀어보면 금곡 선영의 명당 발복으로 본다.

금곡 선영은 상·중·하 3자리이다. 최상단에 김 회장의 증조부모, 그 아래에 조부모, 하단에 부모 묘소가 있다. 건좌 손향(乾坐 巽向)의 천지정위격(天地定位格·모든 일이 순리대로 이루어지는 명당) 명혈로 모두 정혈에 잘 모셨다.

묘소는 아마도 이장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처음부터 여기에 모셨다면 김 회장이 어린 시절 간난(艱難·몹시 힘들고 고생스러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명당을 이렇게 연이어 쓰면 그 발응의 정도는 단순 더하기 개념이 아니라 상승작용을 일으켜 몇 배의 힘을 받는다.

김수근 선영에서 본 매의 형상
김수근 선영에서 본 매의 형상

◆고 김회장 선영,삼수부동격 형상

자리의 형상은 황금색 수탉이 횃대 위에 오르려는 순간 아뿔싸 좌측 가까이 매가 있다. 닭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잔뜩 긴장한 상태이다. 오른쪽에는 개가 누워있다. 개가 있으니 매도 쉽사리 덤비지를 못한다. 다행히 매는 멀리 응시하고 있다. 이러한 형상을 삼수부동격(三獸不動格)이라 칭한다.

이는 서로 간에 기(氣)가 최고조로 팽팽한 상태이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자리를 대 명당으로 친다. 전남 광양에는 오수부동격(五獸不動格)으로 이루어진 곳이 있다. 오수부동격은 가장 뒤편에 코끼리가 있고, 그 앞에 호랑이, 또 그 앞에 개, 개 앞에 고양이, 그 앞에 쥐, 쥐는 코끼리를 보고 있는 형상이다.

이곳은 명사(明師) 소점지(所占地)이다. 그 근거는 첫째, 혈처에 정확히 모셨다. 현재 묘소가 있으니 '명당이다' 또는 '아니다' 라는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나 아무것도 없는 자연 상태에서 이런 자리를 찾아냈다는 것은 명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지형이다. 둘째, 닭의 형상이라 비석이나 상석을 놓지 않았다. 상석과 비석으로 치장한 타 재벌가의 선영과는 사뭇 다르다. 현재의 둘레석과 경계석은 후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매가 가까이 있으니 비보(裨補) 차원에서 묘소 아래에 대나무를 식재했다.
매가 가까이 있으니 비보(裨補) 차원에서 묘소 아래에 대나무를 식재했다.

셋째, 매가 가까이 있으니 비보(裨補) 차원에서 묘소 아래에 대나무를 식재한 점이다. 대나무에 가려 매가 닭을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풍수에서 완전한 땅이란 없는 법(風水無全美)이다. 비보란 '땅의 형세를 보아 풍수 이론에 결함이 있는 부분을 보태거나 채워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김 회장 조부모 묘소와 부모 묘소 좌·우측에 자연석 돌로 축대를 쌓았다. 아래에서 보면 마치 성벽 같다.
김 회장 조부모 묘소와 부모 묘소 좌·우측에 자연석 돌로 축대를 쌓았다. 아래에서 보면 마치 성벽 같다.

언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부모 묘소와 부모 묘소 좌·우측에 자연석 돌로 축대를 쌓았다. 아래에서 보면 마치 성벽 같다. 아마도 바람이 친다고 하여 쌓은 모양인데 이곳은 그럴 필요가 없는 곳이다. 동남향이라 햇빛도 잘 받고 지형적으로도 바람 영향이 없는 곳이다.

닭의 형상에 이런 형태로 돌을 쌓아 놓으면 후손 중에서 특히 목생(木生)이 이금치사(以金致死)의 해(害)를 입는다. 요즈음에는 주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풍수에서는 물의 시작점(得水)과 빠져나가는 마지막 지점(破口), 물이 합수(合水)되는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곳은 물이 을진(乙辰) 방위에서 합수가 된다.

풍수에서는 물의 시작점(得水)과 빠져나가는 마지막 지점(破口), 물이 합수(合水)되는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곳은 물이 을진(乙辰) 방위에서 합수가 된다.
풍수에서는 물의 시작점(得水)과 빠져나가는 마지막 지점(破口), 물이 합수(合水)되는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곳은 물이 을진(乙辰) 방위에서 합수가 된다.

이 합수 방위와 관련된 글자가 천간합(天干合)의 곤임을(坤壬乙), 지지합(地支合)의 신자진(申子辰) 여섯 글자인데 김 회장의 자식들 출생년도 띠(예를 들면 임진생(壬辰生))가 대부분 이곳 합수처와 연관된 띠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주산이 필봉(筆峰)이라 자녀들이 공부를 잘했고 전부 명문대를 졸업하였다. 이렇듯 풍수는 신비스러운 학문이다.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대성산업은 1957년 사업체를 대구에서 서울로 이전하여 대성연탄㈜을 설립하였고 왕십리공장을 준공한다. 1960년 문경탄광 인수, 1968년 대성산업(주) 설립, 1971년 대성와사공업(주) 흡수합병, 1972년에는 대성연탄(주)과 대성산업공사를 흡수 합병하였다. 1976년 기업을 공개하여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다.

연탄사업을 시작으로 석유, 도시가스, 신재생에너지, 환경에너지 등 에너지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명실상부 국내 최초의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한다. 대구도시가스, 서울도시가스 등 대도시 도시가스 공급업체가 대성의 계열사인 대성에너지이다. 새로운 서민 연료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성(大成)'이라는 상호는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의 대기만성(大器晩成)에서 따왔다. 대성산업을 에너지전문 대기업으로 일군 김 회장의 경영철학은 남달랐다. '신용을 지켜라', '공사(公私)를 구분하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김 회장의 '봉사, 성실, 진취'의 경영정신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환란(換亂) 속에서 더욱 빛났다. 김 회장은 기업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등 국가경제 회복에 기여한 공로로 1999년 '상공의 날'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김 회장은 계열사들의 평균 부채비율을 늘 100% 아래로 철저하게 관리하는 등 경영자로서도 신중한 면모를 유지했다. '믿을 수 있는 기업'이란 그룹이미지 구축에 그의 성향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기질은 선영의 산세에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평생을 국민 연료 하나에 매진한 김수근 명예회장, 대성그룹과 16개 우량 계열사를 남긴 그는 2000년 현업에서 물러났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 2001년 85세를 일기로 작고한 김 회장이 필담으로 남긴 유언이다.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인영 풍수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