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에도…디지털 성범죄 무방비로 노출된 학생들

입력 2022-12-07 16:23:43 수정 2022-12-07 19:42:05

대구시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인식 및 실태조사…151명 "성적 농담·표현 노출"
익명의 누군가에게 개인정보 제공…범죄 악용

아동 성범죄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아동 성범죄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중학생 A군은 최근 친구들이 SNS 채팅방에 올린 자신의 몸 사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운동 후 샤워를 하는 사이 친구들이 장난삼아 A군의 사진을 찍고 동의 없이 공유했다. 수치심이 극에 달했지만 해결할 방안이 없어 홀로 끙끙 앓던 A군은 뒤늦게 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또래인 B양도 온라인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만난 남성 때문에 불안에 휩싸였다. 남성은 자신의 신상 정보를 먼저 밝히며 B양에게 접근했다. 상대가 밝힌 신상 정보를 그대로 믿어버린 B양도 그에게 개인정보를 넘겼다. B양의 신상을 파악한 그는 '찾아가겠다'며 돌변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예방 교육은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학생들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등 또 다른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대구행복진흥원 여성가족본부는 '대구시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인식 및 실태조사' 결과를 지난 5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이뤄졌고 대구 지역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 944명(여학생 502명, 남학생 442명)이 응답했다.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온라인상에서 가장 많이 겪는 피해 사례는 성적인 농담이나 성적인 표현에 노출되는 경우다. 151명의 학생이 이 같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외모나 몸매에 대해 불쾌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학생이 134명으로 뒤를 이었다. 61명의 학생은 원치 않은 사진이나 영상이 채팅방에 공유돼 고통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일부 학생들은 형사 처벌 수준의 심각한 성범죄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45명의 학생이 '원치 않는 사람으로부터 반복적으로 야하거나 싫은 메시지, 음란물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18명은 '동의 없이 내 몸 일부가 촬영된 적이 있다'고 알렸다.

'사진이나 영상을 다른 곳에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는 학생과 '몸을 촬영하자거나 노출된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받은 적이 있다'는 학생도 각각 15명, 11명에 달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 학생 절반 이상은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에게 개인정보를 함부로 알려주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과 1대 1 대화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120명의 아동·청소년의 53.3%는 이름과 생년월일, 휴대전화, 학교 등 구체적인 개인정보를 알려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영주 대구행복진흥원 여성가족본부 연구위원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디지털 성범죄예방교육 강화가 필요하다"며 "예방부터 대처까지 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