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전통시장이 사라진다…온라인 판매·배송 등 부활 안간힘

입력 2022-12-11 15:23:11 수정 2022-12-11 19:06:07

10년 새 50여곳 사라져
쇠락 길 걷던 포항 큰동해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사업으로 회원제, 쇼핑앱 도입
소규모 지역들, 인구소멸 영향에 상인·소비자 함께 줄어…전통시장 상권 더 빨리 위축
경북도 "문화관광형 사업, 경북 디지털 전통시장관 통해 체질개선…트렌드 적응 도울 것"

지난 2017년 경북 포항시 큰동해시장에서 상인회가 고객감사 대축제를 열고 있다. 포항시 제공
지난 2017년 경북 포항시 큰동해시장에서 상인회가 고객감사 대축제를 열고 있다. 포항시 제공

경북 포항시 큰동해시장에서 고객회원감사제를 열고 있는 모습. 포항시 제공
경북 포항시 큰동해시장에서 고객회원감사제를 열고 있는 모습. 포항시 제공

경북의 전통시장이 10여년 새 50여 곳이나 사라졌다. 대형 소매점(백화점, 대형마트)과 SSM(기업형 슈퍼마켓), 편의점, 온라인 유통업체가 자리를 꿰찬 데다 소규모 마을에선 인구마저 줄어든 영향이다.

시설 현대화, 온라인 주문·배송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자구책을 찾고 있으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포항 큰동해시장, 회원제·온라인주문 통해 쇠락 극복

포항 남구 죽도시장 인근의 큰동해시장은 130여개 점포 중형 시장으로 과거 한때 일일 방문객 4천명에 달했으나 2017년 하루 1천200명 수준으로 떨어져 존폐 기로에 놓였다.

이곳 시장은 구도심에 있어 주변 청년 인구 유출이 심했다. 2012년 포항운하 착공을 앞두고 주민 2천명이 이주해 상권도 급격히 위축됐다. 주 고객층은 50대 이상에다 신규 고객도 유입되지 않아 미래가 불투명했다.

상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자며 2018년 정부 특성화 첫걸음시장 육성사업에 지원했다. 고객서비스 교육을 받고 신용카드 결제도 도입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대상에 지정됐다. ▷전국 전통시장 유일 고객회원제 도입 ▷구매액 5천원 당 100원의 포인트 엽전 제공 ▷축제 개최, 편의공간 제공·대여 ▷포항 유일 모바일 장보기 ▷식품 구독·배송 서비스 등 대형마트 못지않은 서비스를 도입했다.

매출이 크게 뛰었다. 회원 3천800여 명, 일평균 방문객 2천여 명에 이른다. 20~40대 젊은 층 4인 가족 방문객이 2017년 대비 4배 늘고 객단가도 40% 뛰었다.

모바일 장보기 앱 '달려라 큰동해' 회원 2천명이 시장 총 매출을 월 평균 2천만원 끌어올렸다.

김인석(47) 포항 큰동해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단장은 "큰동해시장이 기존 영업방식을 고수했다면 경북 내 여타 중소 시장들처럼 소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현대 유통업계 전략을 도입해 회생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경북 포항시 큰동해시장에서 상인회가 고객감사 대축제를 열고 있다. 포항시 제공
지난 2017년 경북 포항시 큰동해시장에서 상인회가 고객감사 대축제를 열고 있다. 포항시 제공

◆전국 전통시장 10여년 새 209곳 소멸…경북 53곳 감소 '최다'

시장 회복에 성공한 큰동해시장은 이례적 사례다. 포항과 경산, 구미, 경주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인구소멸 영향에 소비자는 물론 상인마저 줄고 있다.

11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전국 전통시장 수는 1천401곳으로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6년(1천610곳)보다 209곳(13.0%) 줄었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53곳(191→138곳)이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이어 전남에서 30곳, 부산 23곳, 충남 20곳, 경남 18곳. 서울 17곳, 경기 15곳 등이 각각 전을 접었다.

전통시장이 줄어드는 것은 인구 감소 및 고령화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에서 인구소멸이 잇따르자 시장 상인과 소비자도 덩달아 줄면서 상권 매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인구 2천~2만명 안팎의 면 소재지일수록 상황은 심각하다.

예천군 한 전통시장 상인은 "기존 단골들도 읍내 마트에 장을 보러 가지 더는 볼거리 적은 전통시장에 오질 않는다. 남은 손님 붙잡기에도 힘이 부친다"고 했다.

이와 달리 현대식 유통형태를 적용한 상점가와 사설시장은 소폭 늘었다.

문경시 한 상점가 상인 이모 씨는 "전통시장에서 옷 장사를 해보려다 시장과 점포 규모가 작고 임차료는 비싸 접근성 좋은 현대식 건물을 택했다"며 "방문객이 넓은 주차장에서 바로 상가에 들어서 쇼핑할 수 있다는 게 상점가에 입점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문경시는 전통시장인 문경중앙시장과 인근의 점촌역전상점가 등 원도심 복합상권을
문경시는 전통시장인 문경중앙시장과 인근의 점촌역전상점가 등 원도심 복합상권을 '점촌점빵길'이라는 통합브랜드로 정해 전통시장 상인과 상점가 상인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사진은 문경중앙시장. 문경시 제공

◆대형·온라인 유통기업과 경쟁…온라인 판매 등 체질개선 안간힘

전통시장 감소세는 과거식 유통의 한계인 ▷오프라인 국한 판매 ▷점포마다 비슷한 상품 구성과 가격 ▷'에누리'로 상징되는 불투명한 할인 정책 ▷신용카드 사용 어려움 ▷먹거리를 제외하면 부족한 즐길거리 등으로 지목돼 왔다.

반면 편의점과 대형마트, 백화점 등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마트 올해 3분기 분기보고서의 전국 유통업체 매출 현황을 보면 백화점 소매판매액은 올해 1~9월 27조6천억원으로 2015년 같은 기간(20조6천억원에) 대비 34.1% 늘었다. 이 기간 편의점도 12조1천억원에서 23조2천억원으로 92.7% 증가해 거의 두 배가 됐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유행 여파로 비대면 소비가 선호되자 전통시장은 쿠팡·마켓컬리 등 온라인의 '빠른 배송' 유통업체들과도 경쟁할 판이다.

정부가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디지털 역량을 키우고자 온라인 마케팅·판매 노하우를 알리고 온라인 주문·배송 체계를 보급하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문경시는 전통시장인 문경중앙시장과 인근의 점촌역전상점가 등 원도심 복합상권을
문경시는 전통시장인 문경중앙시장과 인근의 점촌역전상점가 등 원도심 복합상권을 '점촌점빵길'이라는 통합브랜드로 정하고 전통시장 상인과 상점가 상인간의 상생을 위한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문경시 제공

전문가들은 특색 있고 차별화 되는 전통시장이 생존법이라고 진단한다.

국책사업으로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을 벌여 아케이드(통로 지붕), 고객 주차장 설치에 나서고 있지만 천편일률적인 시장 형태로는 궁극적 해결책은 못 된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제주, 경주 등 관광도시의 시장들처럼 특산물 판매와 연계하거나 야시장·한식뷔페를 내세워 관광객을 유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장은 "경북의 전통시장 감소세는 인구소멸과 직결된 경향이 있다. 지역민 소비자가 줄고 상인도 고령화해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면서 "경북은 특산물 덕분에 농업소득 1등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시장에서 각지 특산물과 관광기념품을 연계해 지역 안팎 방문객을 불러들일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경북도는 정부 '전통시장 문화관광형 사업' 참여를 독려하며 전통시장 부활을 돕고 있다. 큰동해시장처럼 서비스를 현대화하고 관광명소의 하나로 마케팅해 지역 내 관광지 구경과 전통시장 방문, 맛집 투어를 연계하는 방문객 유입 전략이다.

이달 중에는 '경북 디지털 전통시장관' 홈페이지를 열어 지역 내 전통시장들을 입점시키고 온라인 판매와 택배·퀵 배송을 지원한다. 전통시장 제품을 온라인 판매하는 '네이버 장보기'에도 입점하도록 도울 방침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전통시장 점포 상인 상당수가 장년·노년층이다 보니 온라인·비대면 트렌드에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이를 최대한 돕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