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 친구를 따라 대구종합유통단지에 간 적이 있다. 이 친구는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고, 몇 년 전까지는 다른 지역에 살았는데 인쇄기가 필요해지자 유통단지를 떠올렸다. 유통단지로 가던 길에 친구는 "거기 가면 싸게 살 수 있대"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날 친구는 인쇄기를 사지 않았고, 며칠 뒤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최근 이 친구에게 유통단지에서 인쇄기를 사지 않은 이유를 다시 물어봤다.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없었고, 인터넷으로 사는 게 더 저렴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친구는 대뜸 이름 이야기를 꺼냈다. "유통단지는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는 거다. "1980, 9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유통단지 안에서도 이름이 논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지난달 30일 유통단지관리공단에서 열린 '유통단지 활성화 2차 자문회의'가 발단이다. 이진수 호텔인터불고엑스코 대표이사는 "좀 더 접근성이 좋고, 친근한 이미지를 주도록 이름을 다시 검토하고, 거기에 맞춰서 CI(기업 이미지)에 변화를 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제안했다. 또 "30여 년 전에 붙은 유통단지라는 이름은 지금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누군가는 "이름 바꾸는 게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름에 민감하다. 연평균 개명(改名) 신청 건수는 15만 건.
2013년 한국산학기술학회 논문지에 실린 '개명의 동기와 개명 후 자기지각 척도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면 이름을 고친 전국 161명을 대상으로 물은 결과 개명 동기는 ▷좋은 이름을 갖고 싶어서(14.3%) ▷운명을 바꾸고 싶어서(12.8%) ▷이름이 나쁘다고 해서, 성공하고 싶어서(각 12.1%) ▷행복해지고 싶어서(10.8%) 순으로 높게 나왔다.
이름을 단순히 무언가를 지칭하는 글자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름은 새로 접하는 대상의 첫 번째 정보다. 겉모습부터 본 게 아니라면 첫인상이 되기도 한다. 하물며 유통단지는 대중을 상대하는 시설인데, 유통단지가 사람들에게 심어 주려는 인상이 무엇인지 지금 간판으로는 알기 어렵다.
심리적 접근성이 가져올 효과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유통단지를 '가 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일'은 20년이 넘도록 깨지 못한 퀘스트(quest·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다. '다시 찾고 싶은 장소로 만드는 일'은 그다음 문제다.
이름이든 무엇이든, 새로운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일단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인 유통단지 상가별 용도를 두고 결론 없는 문답만 주고받기를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찬반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입점 시설 다양화를 원하는 점주들은 상가 용도를 확대해 달라고 요청하고, 대구시는 입장부터 일원화하라고 답한다.
이 이야기는 2차 자문회의에서도 반복됐다고 한다. 1993년 유통단지 조성 후 29년 만에 자문회의를 가동해 기대를 품었지만 회의 내용을 들으니 지지부진하다 사라질 모임이 될까 염려스럽다.
이 와중에도 희망을 놓지 않은 사람들이 아등바등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행정 당국은 현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은 겁이 없기 마련이다. 정말 고사 위기를 느낀다면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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