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발목 잡힌 스마트팜] 콘크리트 건물 수직농장, 농지에 못 들어선다

입력 2022-12-04 15:34:16 수정 2022-12-04 21:46:04

경북도·예천군의 수직농장 계획, 관련법 미비 탓 2년가량 늦춰져
"건축용 적용…농업시설 아냐" 농업진흥구역 용도 제한 발목

경북 상주시 스마트팜 혁신밸리. 경북도 제공
경북 상주시 스마트팜 혁신밸리. 경북도 제공

경북도의 '농업대전환' 핵심 정책이자 미래 농업의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 '스마트팜'이 규제와 법령 미비로 겉돌고 있다.

스마트팜 일종인 수직농장은 '농지에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는 규제 탓에 농업시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콘크리트 건축물 필수' 수직농장, 농지에 지으면 위법?

4일 농림축산식품부와 경북도 등에 따르면 현행 농지법은 필지 목적상 농업용지(농지)와 농업진흥구역(옛 절대농지)에 대해 "농업 생산 또는 농지 개량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토지이용행위, 그 밖에 농지법에서 정한 토지이용행위만 허용한다"고 정하고 있다.

농업진흥구역은 농업용지(농지) 감소를 막고자 지자체 등 공공 주도로 농지로 지정하고 정비해 용도 변경을 제한해 둔 농지를 이른다.

이 법에 따라 농지와 농업진흥구역에는 건축법 제약을 받지 않는 ▷온실 ▷버섯 재배사 ▷비닐하우스 ▷축사 등 일부 구조물만 지을 수 있다. 수직농장은 건축법 적용 대상이라는 이유로 농업시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수직농장은 공장형 건물 속 여러 층으로 쌓아올린 선반에서 엽채류나 허브류를 재배하는 스마트팜의 하나다.

외부 기후 영향을 최소화한 콘크리트 건축물 실내에서 태양광 대신 LED 조명을 쬐고,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한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설비로 적정 온·습도와 물·비료를 공급한다. 원하는 재배·생육 조건을 제어하고 작물을 안정적으로 기를 수 있어 차세대 농업기술로 주목받는다.

이렇다 보니 지자체와 농업계는 "오랜 법이 신산업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탄한다.

경북 예천군 한 민간 수직농장 모습. 이곳은 애초에 농지가 아닌 곳에 수직농장을 지어 농지법 관련 제약을 받지 않았다. 경북도 제공
경북 예천군 한 민간 수직농장 모습. 이곳은 애초에 농지가 아닌 곳에 수직농장을 지어 농지법 관련 제약을 받지 않았다. 경북도 제공

◆경북도·예천군 '수직농장 단지' 좌초…"농지 해제 시 2년 뒤 착공"

경북도·예천군이 추진하던 수직농장 단지 조성 계획도 2년이나 밀릴 상황이다.

경북도는 지난 7월부터 '2022년 임대형 수직농장 조성 기본계획 및 공모계획(안)'에 따라 경북 예천군 지보면 매창리 782번지 일대 군유지인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단지' 부지 가운데 3천여 ㎡ 터에 임대형 수직농장을 설치하는 보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총 예산 100억원을 들여 올해 중 건물 하나 당 연면적 165㎡인 수직농장 20동을 지은 뒤 내년까지 저렴한 가격에 임차하고자 했다. 청년농에게 첨단 농업 경영 기회를 제공하고, 1개 동 당 연간 1억원씩 모두 20억원 연 소득을 내고자 했다.

경북도와 예천군이
경북도와 예천군이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을 조성하는 경북 예천군 지보면 매창리 군유지. 경북도 제공

수직농장 계획부지가 있는 스마트팜 단지는 경북도청 신도시와 가깝고, 단지 내에 청년농 입주 마을도 조성할 예정이어서 인구 유입이 기대됐다. 지난해부터 상주시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연간 50명씩 배출하는 청년농들이 이곳에 정착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곳 일대가 농업진흥구역인 탓에 수직농장 건축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경북도는 일단 수직농장 계획부지만이라도 농업진흥구역에서 해제해 대지로 용도를 전환(전용)한 뒤에 수직농장을 짓고자 한다.

이에 도는 내년 1월까지 계획부지 내 도로를 설치하고서 주민·예천군의회와 군 도시계획위원회 '농업진흥구역 해제' 심의를 거칠 예정이다. 이어 경북도 도시계획위에서도 타당성이 인정되면 대지로 전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모든 절차를 마치려면 일러야 2024년 6월쯤 수직농장을 착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준공에 최소 6개월 든다고 가정해도 당초 계획보다 2년이 늦다.

경북도는 이처럼 번거롭고 오랜 절차를 밟는 것보다, 불필요한 규제를 푸는 일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수직농장을 농업시설로 인정해 이를 농지에 지을 수 있도록 하거나, 농업진흥구역에 수직농장 건축을 허가받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6개월~1년가량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9월 1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차 농식품 규제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9월 1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차 농식품 규제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는 '농지 아닌 곳'에만 지어야…농식품부 "내년 상반기 규제개혁 정부입법"

달리 보면 농지가 아닌 곳에 수직농장을 짓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지난 1월 한 농업회사법인은 경북 예천군 호명면의 농지가 아닌 1천650㎡ 부지에 30억원을 들여 경북 최초 수직농장을 짓고 운영을 시작했다. 8단 무빙베드에 샐러드용 프릴아이스를 재배해 하루 350∼400㎏씩 연간 130t을 수확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팜 업계는 국내에 스마트팜 관련 지원이나 정책이 미비한 만큼 규제 해소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스마트팜 선도국가 네덜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높은데도 농산품 수출에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농업정책에 더해 일찍이 수직농장 등 스마트팜을 도입한 덕분"이라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수직농장 등에 대한 규제 개혁을 고심 중이다.

농지를 수직농장 시설부지로 활용할 때는 '10년 일시 사용허가'를 내주고 기한이 끝나면 원상복구토록 하거나, 농업진흥구역 내에는 수직농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이다.

농식품부는 지난 9월 14일 정황근 장관 주재 '제1차 농식품 규제개혁전략회의'에서 "수직농장을 비롯한 스마트 작물재배 시설 관련 규정의 미비를 보완해 농지의 타 용도 일시사용 허가대상에 추가하겠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농업진흥구역 내에도 짓도록 하겠다"고 했다.

다만, 농지나 농업진흥구역처럼 땅값이 싼 곳에 수직농장 건축을 허가했다가는 훗날 상업용·주거용 등으로 건물을 개·보수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우려도 있어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농식품부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지에 수직농장 건축물이 범람할 경우 주변 농가에 피해를 주거나 농촌 경관·환경을 해칠 우려가 있다. 적정선을 찾아 내년 상반기까지 정부입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이 9월 1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차 농식품 규제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이 9월 1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차 농식품 규제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