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병 수필가
'인생사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사고로 얼룩지는 세상이지만 사람에게 깔려 죽는 일이 대한민국 서울 하늘 아래서 일어나다니요. 아침저녁 웃으며 헤어지곤 다시 만났던 가족과 친지들이건만 다정한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영영 이별이라니 말이 됩니까.
밤을 낮 삼아 살았습니다. 안대 쓰고 연자방아 돌리는 나귀처럼 우리는 오로지 앞으로만 달렸습니다. 나귀는 눈이 가려져 볼 수 없었지만 우리는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한쪽만 보았습니다. 그것이 세상 전부라 믿었습니다. 몸을 뒤집거나 고개를 돌려본 적 없는 도다리나 광어로 살았습니다.
등 기댈 곳조차 없는 우리는 늘 외로웠습니다. 인정받는 일은 언감생심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넘치는 끼와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이라도 발산하고 싶었습니다. 이국적 풍경으로 지친 삶을 위로받고, 충전하고 싶었습니다.
인파에 몸을 맡긴 채 천천히 천천히 걷는 내내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대한민국호에서 이런 유대감, 편 가르지 아니하고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게 좋았소이다.
"밀어, 밀어!"
연이어 외치는 소리가 장난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밀려오는 파도에 힘껏 몸을 뒤로 젖혀야 했습니다. 내 앞 하이힐의 아가씨는 앞사람이 다칠까 봐 안간힘으로 버티다 버티다 쓰러졌습니다. 희미하게 들리던 "뒤로, 뒤로!"가 "밀어, 밀어!"에 묻혀 버렸습니다.
한마음이라 느꼈던 이들이 죽음으로 가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함께 건너 버렸습니다.
저희들 중에는 지상파 데뷔 출연을 확정받은 배우가 있고, P씨 부부의 막내아들은 군에서 휴가 나와 생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홀로 사시는 아버지에게 둘도 없는 효녀 L양은 아직도 아버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교환학생으로, 더러는 한류를 몸소 느끼고자 한국에 온 외국 명문 대학생들도 이국땅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습니다. 운명의 여신이 참 야속합니다. 한국 정착을 동경해 오던 러시아 미녀들도 있군요.
사랑하는 분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저희는 영원한 죄인입니다. 세상에 이처럼 억울한 죽음이 또 있을까요. 손을 뻗어도 닿지 않습니다. 사랑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미안합니다, 골백번 외쳐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되돌아옵니다. 입 있는 자들은 다 한마디씩 하겠지요.
가엾은 저희의 죽음을 동정하는 어떤 일도 죽음은 되돌릴 수 없고, 위로도 되지 않습니다. 원인과 진상은 또 공염불이 되겠지요.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녀사냥으로 저희의 위로에 바쳐지는 제물이 또 다른 "밀어, 밀어!"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밀어, 밀어!"를 외쳤지만 어느 누구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남은 분들이여,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남 탓만 하는 의식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저희가 억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공범이었습니다. 진정 저희를 위로하시려면, 또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면,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기본에 충실하십시오.
지상에서 맹수의 공격을 받은 뱀수리가 두 발로 애써 달리지만 종국에는 잡아먹힙니다.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호에 날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주장만 앞세우다 뱀수리의 어리석음을 자초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잠시 느꼈던 대한민국호에서의 설렘을 안고 이제 하늘 여행 떠나려 합니다.
여러분, 안녕!(어느 영령의 말을 받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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