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이태원 참사의 비극, 우리는 ‘안전’한가

입력 2022-11-11 13:49:36 수정 2022-11-11 19:09:27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공연문화전문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공연문화전문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공연문화전문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420년을 버티고 있는 불멸(不滅)의 명작으로 '리어왕'이 있다. 재해석되어 공연된 리어왕은 현실 정치를 타격하는 날카로운 풍자로 의미가 컸다. 권력의 귀를 향한 현란한 수사로 큰딸과 둘째 딸은 거대한 영토를 소유하게 되고 막내딸 코델리아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는 리어왕의 물음에 "존경과 사랑을 어떠한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코델리아의 진실한 마음이 묻어 있었다. 달콤한 말을 듣고 싶었던 왕은 막내딸에게 분노했고 두 딸한테 분배된 영토는 권력의 욕망으로 타락되어 갔다. 두 딸한테도 버림받은 왕의 최후는 비참했다. 프랑스와 내전을 겪으며 전쟁의 광야를 떠돌았다. 연극은 진실한 인간들이 부재한 세상에서 세 딸과 참모, 리어왕까지 최후의 죽음을 맞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왕의 곁을 지킨 것은 '광대'뿐이었다.

이태원 참사 비극을 놓고 '안전 대책' '위기 시스템' '보고 체계' 등 세 가지 부재(不在)로 인한 국민적 참사라며 야권은 '국정감사'를 요구하고 있고, 여권은 엄정한 진상 조사와 수사가 먼저라며 여·야 정치적인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전이 허술하게 뚫려 버리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시민은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사이, 당일 설렁탕을 먹고 파출소 옥상에서 참사 상황을 지켜보던 경찰서장은 늦장, 부실 지휘 등으로 피의자로 입건되었고 관련자들의 허술한 대응과 말 바꾸기로 국민적 공분은 커지고 있다. 떨리는 손으로 현장을 지킨 용산소방서장 입건에 꼬리 자르기 식 수사라는 우려와 비난이 일고 있고 대한민국 사회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주인공은 실종된 상태이다. 진실 찾기와 공방만 난무하고 있다. 선후를 떠나 당일 책임자들의 행적과 대응들이 드러나면서 국민은 혼란스럽고 참혹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진실의 소리를 외면한 리어왕의 한 장면이 스쳐 갔다. 참사 당일 용산구청은 이태원 참사 재난 문자를 발송해 달라는 정부와 서울시 요구를 78분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상을 초월한 대처였다. 사고 당일 4시간 전부터 압사 사고를 직감한 시민들의 전화를 받고도 출동으로 작동되지 않았고 수많은 인파 사이로 이태원 파출소 경찰의 울부짖는 소리만 들렸다. 이런 가운데 사고 다음 날 정부 해명은 논란을 증폭시켰다. 한덕수 총리는 "통역 안 들리면 책임은 누가"라는 말과 영어 발음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분위기가 이런데,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엄중한 이태원 참사 공방이 이어지는 현장에서 김은혜 홍보수석의 '웃기고 있네' 메모가 공개된 뒤 김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며 울먹였다. 왜들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대책도, 여야의 책임과 진실 공방도 죽음에 위로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참사의 원인은 시민들의 진실한 절규와 목소리를 외면한 데서부터 비롯되었고 컨트롤타워는 먹통이었다. 책임자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그 어떠한 재난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도록 견고한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고 불통되고 있는 위기 보고 체계 연결선을 복구하는 일이다.

이러한 가운데 홍준표 시장이 운영하는 온라인 소통 채널 '청년의꿈' 청문홍답(청년이 물으면 홍준표가 답한다)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총리 후임으로 홍 시장을 택한다면 수락하겠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홍 시장은 "한 총리가 잘하고 계시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정치권 이슈에 대구시장의 입이 뉴스가 되고 대규모 축제가 개최되는 현실에서 대구의 안전도, 파워풀 정치도, 우리는 '안전'한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