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봉화 광산 사고 생환 광부와 그의 아들

입력 2022-11-07 19:55:32 수정 2022-11-08 11:51:19

조두진 논설위원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이 4일 밤 생환했다. 사고 발생 9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다. 희망을 잃지 않았던 매몰 광부들, 밤낮없이 구조 작업을 펼쳤던 동료 광부들과 소방대원들의 헌신, 무사 생환을 기원하는 가족들과 국민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생환한 광부는 병원으로 찾아온 아들에게 "준철이 왔나"라고 말했다. 아들에게는 '준철이 왔나'라고 평소처럼 건네는 아버지의 인사가 그처럼 고맙고 행복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생환 광부의 아들은 '아버지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묻는 기자에게 "할 말이 너무나 많지만, 꼭 안아드리고 싶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아버지는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 부모님을 사랑하면서도, '다 큰 자식들'은 부모님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필자는 큰 강이 흐르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장난감이 귀했던 시절, 겨울에 동네 꼬마들은 강에서 썰매를 탔다. 아이들은 저마다 나무판자와 철사(썰매 날 용도)를 구해 썰매를 만들고, 나무 작대기에 못을 꽂아 썰매 지팡이를 만들었다. 어설프게 만든 탓에 한두 번 타고 나면 썰매 날이 비틀어지거나 지팡이 못이 빠지기 일쑤였다.

필자의 아버지는 가느다란 철사가 아니라 지름이 0.5㎜ 정도 되는 강선(鋼線)으로 썰매 날을 만들어 주셨다. 지팡이 역시 강선을 둥근 막대기에 박은 다음 날카롭게 갈아 만드셨다. 썰매 판과 지팡이에 대패질을 하고 파란색 페인트까지 칠해 주셨다.

우리 형제들의 썰매는 동네에서 가장 세련되고, 가장 튼튼하고, 가장 빨랐다. 동네 형들과 친구들이 그 썰매를 타 보려고 줄을 섰다. 그렇게 멋진 썰매를 만들어 주셨지만,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필자가 예닐곱 살 무렵, 아버지는 통나무를 자르고 깎아 바퀴를 만들고, 그 위에 깔판을 얹어 작은 '구르마'(수레)를 만드셨다. 해 질 무렵이면 아버지는 구르마에 우리 형제들을 태우고 신작로를 달리셨다. 날 듯이 기쁘고 즐거웠던 그 시절에 대해서도 아버지께 고맙다고 말씀 드린 적이 없다. 장난감 화약총도 만들어 주셨지만, 어린 시절에도 어른이 된 뒤에도 그때 정말 기뻤다고, 고맙다고 말씀 드리지 못했다. 그래 놓고도 원망은 빼놓지 않고 알뜰히 늘어놓았다.

우리는 지난날 저지른 잘못과 지난날 뱉은 모진 말을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마땅히 했어야 할 말을 하지 않은 죄, 마땅히 했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던 잘못도 크다. 사람은 영민한 존재지만 한편으로는 참 어리석은 존재인 모양이다. 하고많은 날들을 다 보내고,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후회를 한다.

얼마 전 신문사 선배 한 분이 '대구시 문화상(賞)'을 수상했다. 선배는 고령의 어머니를 시상식장에 모셔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모셔갔다고 한다. 그리고 "저를 낳고 잘 길러 주셔서 오늘 큰 상을 받습니다. 어머니 ○○○ 여사님 감사합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아들의 수상 소감을 들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다. 어머니는 아들이 받은 상이 아니라, 아들의 헌사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그날 선배는 자신이 받은 상을 세상에서 가장 큰 상으로 만들었다. 필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부모와 자식은 매일을 잔칫날로 만들 수도 있는 사이인데, 잔치가 잔치인 줄 몰랐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씀 드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