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로 읽는 전쟁 톡톡] 황석산성 전투, 피바위는 알고 있다

입력 2022-11-04 14:30:00 수정 2022-11-04 17:39:12

황석산성
황석산성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황석산 고갯길, 함양의 육십령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칼날 같은 화강암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는 황석산은 냉정과 위엄이 서려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덕유산과 거망산 등 동서남북이 구름에 맞닿을 듯 높고 험한 바위산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그 7, 8부 능선을 따라 축성된 천혜의 요새지, 황석산성을 물들인 가을빛은 피를 토한 듯 붉다.

1597년 팔월 초이레, 이순신이 떠난 한산도가 무너졌다. 임란 이후 조선 수군이 장악해 왔던 제해권이 왜군에게 넘어간 것이다. 파죽지세의 왜군은 여세를 몰아 곡창지대인 호남을 노렸다.

서생포에서 전라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적장 가토 기요마사가 화왕산성(창녕)을 지키는 곽재우를 피해 함양의 황석산성으로 진격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온 고을에 전운이 감돌았다.

거창의 유덕한 선비 유명개는 지난 임란 때부터 항전의 결기를 북돋우기 위해 '조상 대대로 살았고 후손들이 살아야 할 우리 고을을 우리가 아닌 그 누가 지켜주겠는가. 나를 던져 처자식과 부모 그리고 우리 이웃을 지키자'고 격문을 내걸었는데 또다시 왜군과 맞닥뜨리자 '지금까지 잘 싸웠던 것처럼 적이 성 안에 오르지 못하도록 싸워라. 적은 식량이 부족하여 오래 버티지 못한다. 우리는 한 달을 먹고도 남을 식량이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냐!'고 하며 병기와 물자를 넉넉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드디어 팔월 열엿샛날, 황석산성을 지키고 있던 안음(함양군 안의) 현감 곽준은 남문으로 쳐들어오는 왜군의 주력과 맞선다. 아들과 사위가 울면서 아버지를 피신시키려 했지만 "나는 왜놈의 목을 베고 산성에서 죽을 것이다. 다른 계략이 없다"고 외치며 싸우다가 장렬한 죽음을 당하자 두 아들도 따라 전장에서 죽고 사위마저 포로로 잡혀 참살을 면치 못한다. 함양군수를 지낸 조종도 또한 "일찍이 대부였던 나는 도망쳐 숨는 무리들과 같이 풀섶에서 죽을 수 없다. 죽는다면 단연코 당당하게 죽을 뿐이다" 하며 곽준을 따랐다.

더군다나 조종도는 구차하게 남을 처자식이 왜군에게 욕을 볼 게 뻔하리라 예측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의 손으로 부인과 어린 자식의 목을 베고 의연히 진중에 들어왔으니 어찌 죽음을 두려워했겠는가. 최후를 선택하고 전장에 나선 것이다. 곽준과 조종도는 안의와 인접한 함양, 합천, 거창, 김해, 삼가, 초계, 산음 등 7개 고을 남녀노소 3천500여 명과 합세하여 왜군 2만7천 명을 대적했다.

관리들과 의병 그리고 피난민에 이르기까지 성안으로 모인 남녀노소 모두 전투사가 되었다. 날아드는 왜군의 조총 앞에서 활과 창칼, 돌덩이는 물론 뜨거운 기름과 끓는 물로 대항하고 육박전을 벌였다. 아녀자들은 물과 기름을 끓이고 노인들과 아이들은 돌을 날라 굴렸지만 전세는 턱없이 열세했다. 마침 김해부사를 지낸 백사림이 전투에 참전하여 힘을 보태는가 하더니 접전 하루 만에 그만 겁을 먹고 도망쳐 버렸다.

무관 출신이던 그에게 의지했던 향민들의 전투 의지가 순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모든 부대가 사기를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유명개의 지원 아래 곽준과 조종도가 향민들과 함께 끝까지 분전하였지만 중과부적이었던 것이다.

3일 밤낮을 피를 토하며 밀고 당긴 황석산성 전투가 맥없이 끝이 났다. 헤아릴 수 없는 장렬한 주검들이 성벽의 돌 틈마다 널브러져 있었다. 하늘도 슬픈 듯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고 이른 낙엽들만 수의를 대신해 주검 위로 덧쌓였다.

성이 함락되고 고을의 수령과 순한 백성들이 모두 피를 토하면서 죽음에 이른 것을 본 부녀자들은 비분을 감추지 못했다. 곽준의 딸은 "적들이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갔고 나의 남편 유문호마저 포로로 잡혀 죽었으니 나도 따라 죽으리라"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따라 울던 다른 부녀자들도 '지아비는 죽고 우리가 살아남아 어찌 왜적들의 모욕을 견디랴' 하며 하얀 치마폭으로 얼굴을 감싼 채 벼랑으로 몸을 던졌다. 수많은 부인들이 하나둘 꽃잎이 되어 산성 아래로 떨어져 내리자 순식간에 황석산성은 피로 얼룩졌다. 산성의 바위들은 황석산의 가을빛보다 더 붉은 핏자국으로 선명하게 각색(刻色)되었다.

언젠가부터 안의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도록 비바람에 씻어지지 않은 그 핏자국이 밴 바위들을 피바위라 부르기 시작했다. 피바위는 왜군에 맞서 자신의 삶터를 지키려 한 저항과 의분의 기록이다. 전설보다 더 짙은 피바위를 만든 백성들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택한 희생이었기에 여한이 없었을 것이다.

내 나라와 내 이웃을 위해 죽음마저 불사한 그들의 의로움이 팍팍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욱 경이롭게 다가온다. 역사는 크고 작은 희생으로 이어져간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 인물들과 이야기는 우리 곁에서 영생을 누린다. 황석산성의 피바위가 올해따라 더 붉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