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전후 좌우 이념 갈등…“희생자들 넋 기리고 서로 위로”
6·25전쟁 전후 좌우 이념 갈등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상호 합동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서로 화해하는 자리가 28일 경북 경산에서 마련됐다.
6·25전쟁 전 적대세력에 학살당한 경산 와촌면 박사리 유족들과 전쟁 후 군경에 학살당한 경산 코발트광산 유족들은 이날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합동위령제를 각각 열었다.
특히 합동위령제 사상 처음으로 경산 코발트광산유족회에서 최승호 이사가, 박사리유족회에서는 윤성해 회장이 각각 대표로 상호 위령제에 참석했다.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에 참석한 박사리유족회 윤성해 회장은 "경산 코발트광산과 박사리는 좌우를 떠나 과거 역사 속에서 부모와 형제를 잃은 같은 아픔을 지녔다"며 "함께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고자 위령제에 참석했다. 앞으로도 이념을 넘어 화해와 치유의 길을 함께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나정태 경산 코발트광산유족회장은 "군경과 적대세력에 의해 동시에 부모형제가 피살당했는데 이데올로기가 어디 있겠느냐. 올해 처음으로 유족회 대표들이 서로의 위령제에 참석해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경산에서 이뤄지고 있는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 간의 공동체 회복을 위한 화해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이런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국민적 통합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18일 '경산 박사리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박사리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은 1949년 10월쯤 박사리 인근 마을 주민이 빨치산의 근거지를 경찰에 신고했고, 신고받은 경찰이 군경 합동으로 빨치산 토벌을 진행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빨치산이 1949년 11월 29일 박사리 마을을 습격해 이 마을과 인근 마을 주민 32명이 희생되고 2명은 상해를 입는 등 총 34명이 피해를 입었다.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사건은 6·25전쟁 때인 1950년 7~8월 경산, 청도, 대구, 영동 등지에서 끌려온 국민보도연맹원 및 요시찰 대상자들과 대구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 중 상당수가 군경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1기 진실화해위 보고서에는 1천800여 명, 유족회에서는 3천5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7년부터 3년간 이곳에서 유해 520구를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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