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재해구호법에 두 번 우는 포항 태풍 이재민들

입력 2022-10-30 19:28:02

김병구 동부지역본부 본부장
김병구 동부지역본부 본부장

"수재의연금이 100억 원 넘게 모이면 뭐합니까. 집이 물에 잠겨 당장 장판, 벽지 등이 시급한데,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직접 구입할 수밖에 없었어요."

허술한 재해구호법이 태풍 피해를 입은 포항 시민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피해가 막심하고 당장 잠잘 자리조차 여의치 않은데 구호물품이 제때,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 구호 시스템으로 인해 애만 태우고 있는 것이 현지 사정이다. 이번 태풍 힌남노(9월 6일) 재해를 계기로 허점투성이 재해구호법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봇물이다. 포항시도 법 조항을 손볼 데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현재까지 힌남노가 할퀴고 간 포항 지역에 140억 원가량의 의연금품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연금품 모집 및 배분 주체인 전국재해구호협회는 태풍이 휩쓸고 간 9월 말까지 기존에 구비해 놓은 기본 용품인 재해구호키트(담요, 양말, 칫솔, 수건 등)만 제때 지원했다. 하지만 장판, 벽지, 전기밥솥, 가스 버너 등 생필품은 한 달 이상 공급하지 못했다는 것. 생필품의 늑장 공급은 4~5단계를 거치는 복잡한 의연금품 지급 절차가 이유였다.

이재민들은 당장 필요한 생필품의 경우 재해복구계획 수립 확정 이후 의연금 대상 재해 통보(행정안전부→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 의연금 대상자 확정, 배분위원회 심의 의결 등 최소 40일 이상 걸리는 바람에 결국 의연금을 충분히 확보한 상황에서도 제때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9월 거액을 기부한 A기업은 의연금 중 일부로 이재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전기장판을 구입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10월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처럼 자연재해의 경우 특정 지역에 어떤 의연금품을 보내 줄 것을 요구하더라도 기부자의 의사가 거의 반영되지 않는 실정이다. 재해구호협회 이사회(배분위원회)가 임의대로 배분 방식과 물품 종류 등을 결정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이강덕 포항시장이 기부를 독려하면서 대상자들을 상대로 의연금품을 성금 대신 생필품으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해 사례별 의연금 집계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A지역 재해에 100억 원, B지역 재해에 10억 원이 모이더라도 재해 사례별, 지역별 구분 없이 1년 단위로 뭉뚱그려 집계하기 때문에 큰 피해로 모금액이 많은 지역이 오히려 적은 지원을 받는 경우도 생겨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배분위원회에 재해 당사자 단체나 해당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참여가 배제돼 지역별 실정에 맞는 맞춤형 피해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상당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해 성격이나 지역 실정에 따라 A물품보다 B물품이 더 필요하고, C물품은 아예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이런 현지 상황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 지원액도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유족 위로금이 1천만 원에 불과하고, 1억~2억 원짜리 주택이 모두 파손되더라도 500만 원, 반파되면 250만 원, 침수되면 100만 원 등이 상한선이다. 이처럼 의연금품 지급의 경우 기부자의 의사 반영도, 기부 지역별 공정성도, 현지 실정에도 부합하지 않는 주먹구구식 행태로 이뤄지고 있어 법 개정이 시급하다. 피해 정도에 따른 현실적인 상한액 조정도 뒤따라야 하겠다.

행정안전부와 정치권은 자연재해를 당한 국민들의 피눈물을 제대로 닦아주기 위해 허점투성이인 재해구호법 개정에 서둘러 나서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