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마음과 마음] 수전증을 가진 어느 신랑에게

입력 2022-10-27 14:30:00 수정 2022-10-27 18:44:53

"선생님, 제가 정신적으로 정상이라는 진단서 좀 써주세요. 장모님이 진단서를 가져와야 결혼 허락해준대요." 결혼을 앞둔 신랑이 신부 부모님의 갑작스런 정신건강진단서 요청에 정말 내가 비정상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그는 좋은 학교를 나와서 직장에서 인정받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손을 떠는 증상에서 비롯되었다. 장인어른의 술을 받다가 손이 떨려서 술을 쏟고 말았다. 그는 예기치 않은 당혹스런 상황으로 인해 단단했던 마음이 무너지고,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그 후부터 그는 손 떠는 것을 숨기려고, 부모님 집에 갈 때는 술을 미리 마시고 가거나, 약속을 피하거나 미루었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자 정신과 진단서까지 요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남 앞에 서면 머리가 하예지고 목소리가 떨려서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했다. 이런 수행 불안을 없애기 위해 남모르게 수년을 노력해왔다. 떨림증, 대인불안과 관련된 책을 수도 없이 읽고,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찾아보았다. 웅변학원도 다녀보고 긍정심리학에 매달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기는 쓸모없는 사람이고 남들이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이렇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려고 온갖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본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어나지 않을 일조차 걱정하느라고 에너지만 방전되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힘겨운 노력을 해온 지친 심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대하듯이 세상에서 거절당하고 지친 자기를 안아주어야 한다. 고갈된 에너지가 충전이 되면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 툭툭 털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생각하는 것도 내적 행동이다. 당장 닥친 불안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가 된다면, 삶의 에너지만 소모될 뿐이다. 항상 도끼를 날카롭게 가는데 시간을 다 보내지만, 정작 나무를 베어 집은 짓지 못하는 것과 같다.

스티븐 헤이즈는 수용전념치료(ACT)에서 어쩔 수 없는 불행이나 인생의 고난이 닥쳤을 때 회피하거나 없애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을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조언한다. 행복의 화두는 정상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실효성있게 행동을 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과거를 파헤치는 힘든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되고,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난감한 상황에 처한 새신랑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사막 모래 구덩이에 빠졌다고 상상해보자. 빠져나오려고 모래를 밀어내고 발버둥을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이럴 땐 힘을 빼고 부드럽게 몸을 쭉 펴서 가능한 한 몸의 표면이 모래와 많이 닿도록 하면, 구덩이로 더 빠지지 않을 것이다.

고통스런 기억을 지우려고 하면 더 생각이 나는 것처럼, 저항도 회피도 망각도 하지 말고, 현재 닥친 문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불안과의 싸움을 멈추고 자기감정과 기꺼이 만나는 것이다.

스프링도 많이 누르면 많이 튀어오르는 것처럼 통제할수록 사로잡히기 때문에 이런 경험 통제에서 벗어나서 기꺼이 행동하기를 연습해야한다. 자전거를 배울 때 부모가 균형을 잘 잡으라고 말해준들 잘 탈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직접 안장에 올라앉아 보아야 한다. 골프 스윙을 배운다고 동영상 강의를 하루 종일 본들 골프공을 맞출 수 있겠는가. 몸의 움직임을 본인이 직접 해보고 결과에 따라 수정해나가야 골프실력이 는다.

현실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현재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하는 문제가 남았다.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가치 있는 방향으로 기꺼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인내는 더 나은 것이 나올 때까지 부정적인 경험을 참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망망대해의 나침반처럼 인생이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가치관이다.

야구장에 가면 운동장에서 뛰는 사람과 관중석에 있는 사람이 있다. 관중석의 사람들은 선수를 응원하기도 하고 팝콘도 먹고 경기를 분석하고 선수를 욕하기도 한다. 이들이 경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수 있을까. 아마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다. 마운드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은 경기 진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기기 위해 전념할 것이다.

이들의 대화는 경기에 아주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경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우리는 삶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그저 보고 평가하는 관중으로 있는지, 아니면 경기장에서 직접 뛰고 진행에 대해 치열한 대화를 하고 있는지. 인생의 경기에서 관중석과 마운드 중 어디에 있고 싶을까. 당연히 경기장일 것이다.

가치는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원하는 삶을 향해 전념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그런 삶속에서 배움과 활력을 느끼는 것, 불편함을 회피하는 삶에서 가치에 다가가는 삶으로 전향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우선 좋은 감정만 추구하며 사는 삶은 우리가 가장 깊숙이 믿고 있는 가치대로 살지 못하도록 한다.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를 인용해본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수용)와 바꿔야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전념),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