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예술이 전쟁을 대하는 방법

입력 2022-10-26 10:09:42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25번 국도는 경산의 구도심에서 청도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경산시 남천면을 거쳐 청도로 이어지는 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왼편으로 나지막한 능선이 보인다. 백자산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백자산은 한국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야산이지만, 이 산의 골짜기 중 한 곳인 평산리에는 한국전쟁 초반 3천500명이 넘는 양민이 무고하게 학살당한 코발트 광산이 있다. 공포체험 장소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이곳은 소위 안경공장 괴담 장소로 알려졌다. 학살의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이곳은 20여 년 전 유족회와 지역신문사의 끈질긴 노력으로 일부의 진실이 밝혀진 상태이다.

올해 2월 24일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전쟁의 공포는 점차 우리나라가 위치한 아시아로 번지고 있다. 중국이 국내 정치의 불안을 잠재우고 세계 패권을 잡겠다는 욕심으로 미국, 서방과 힘의 경쟁을 벌이며 대만 일대를 긴장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틈을 타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은 미국과 대한민국에 핵 위협을 가한다. 대한민국도 이러한 새로운 세계 냉전의 전선에 합류하는 듯한 모양새다. 새롭게 부상하는 전쟁 위협의 이면에는 각국의 경제적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걸 웬만한 사람은 안다. 쉽사리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이 벌어질 것은 아니지만 전쟁의 공포가 조금씩 번진다.

경산 구도심에 위치한 보물섬에서는 잊힌, 잊히고 싶었던, 누군가에 의하면 당연히 언급되지 않아야 할 사실이 전시의 전면으로 드러내 보인다. 이 전시는 '아카이브 오브 스피릿츠' 라는 제목으로 몇 년 동안 보물섬에서 다루어 온 경산 코발트 광산과 관련된 전시다. 보물섬의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민간전시공간지원으로 마련됐으며, 전시 기간 2회의 포럼과 시민예술교육이 함께 열린다. 전시에는 심효선, 윤동훈, 이경희 작가가 참여하며 회화, 영상, 콜라주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역사적인 지금의 아픔과 현실을 다룬다. 1950년 6월에 발발한 한국전쟁 이후 7, 8월에 집중적으로 자행된 경산의 코발트 광산 양민학살은 대구의 가창골 학살, 제주 4.3과도 연결된 국가폭력의 암울한 역사다. 이 전시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애도하는데 머물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전쟁이라는 위험 상황은 생각의 자유와 주장을 무시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예술이 전쟁의 공포를 대하는 방법은 맹목적인 국가주의, 관료주의의 참혹함을 밝히는 길이다. 인류의 인권, 자유,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작품을 통해서 자신과 싸우며 만드는 일은 예술가가 시대와 호흡하며 전쟁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일상이 행복하고 평온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의 희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항상 갈등과 반목을 거듭한다. 72년 전 한반도의 곳곳에서는 전쟁을 이유로 일부 국민들이 국민의 자격을 강제적으로 박탈당했으며 죽음으로 내몰렸다. 자신을 변호할 시간을 가지지도 못하고 아무런 기록도 없이 생명을 잃었다. 지금 그 역사를 다시 마주 보는 일은 현재 또는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의 공포를 대하는 예술가의 적극적인 방법이며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