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긴급 대담] ‘대한민국 핵무장’ 가능한가

입력 2022-10-20 14:47:33

"이익과 비용 냉정하게 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학자·정치인 핵보유 목소리 자연스러운 현상…대통령은 신중해야

매일신문은 12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국제안보교류협회에서 한용섭 전 국방대학교 부총장과 백승주 전 국회의원과
매일신문은 12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국제안보교류협회에서 한용섭 전 국방대학교 부총장과 백승주 전 국회의원과 '대한민국 핵무장'에 대한 전문가 대담을 가졌다. 이무성 객원기자

북한이 보름 새 7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한반도 안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대한민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뿐 아니라 이참에 핵무기를 아예 자체 개발해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해야 한다는 핵무장 강경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핵무장' 관련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한용섭 전 국방대학교 부총장과 백승주 전 국회의원과 함께 '대한민국 핵무장'에 대한 긴급 전문가 대담을 가졌다. 대담은 12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국제안보교류협회에서 이호준 서울뉴스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대담자

한용섭 전 국방대학교 부총장(국제안보교류협회 회장)

백승주 전 국회의원(전 국방부 차관)

▶기본적인 질문부터 하겠다. '부국강병'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핵무장'은 할 수만 있다면 하면 좋은 것 아닌지.

한용섭 전 국방대학교 부총장(이하 한)=국제질서를 살펴보면 현재 9개의 핵 무장국과 184개의 비핵보유국으로 나뉜다. 핵보유국이 중심이 돼 '핵확산금지조약(NPT·Non-Proliferation Treaty)을 만들어 나머지 나라가 핵무기를 가지지 못 하도록 국제질서를 잡아놨기 때문에 현재로선 핵무기를 가지려고 하는 나라들은 불법 국가가 된다. 핵확산금지조약을 위반하는 국가가 되기 때문에 마음대로 핵을 가질 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절인 1972년 자주국방의 일환으로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는데 1974년에 미국이 낌새를 알아채고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간섭을 많이 했다. 그래서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받다가 1976년 1월에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다. 우리가 다시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하면 그 당시 겪었던 모든 어려움을 다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백승주 전 국회의원(이하 백)=부국과 강병이 조화를 이루면서 갈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있다. 핵은 가졌지만 부국은 되지 못한 파키스탄, 인도 등이 대표적이다. 또 북한도 핵 보유국이지만 부국은 이루지 못 했다. 부국과 강병을 꼭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부국을 위한 절대조건이 핵무장은 아니다. 핵무장을 하지 않고도 부국이 된 나라가 굉장히 많다.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오히려 핵무장이 부국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북한 같은 경우는 핵무장을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부국강병과 핵무장이 등가적으로 조화를 이룬다고 볼 수는 없다.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중진국의 비핵(非核) 구상인 'Middle Power's Initiative(MPI)'가 있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극대화시킨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이 MPI 모델을 따르면서 국제적 힘을 갖는 부국이 되는 것이 어떤가 싶다.

▶그렇다면 핵무장을 안 하는 게 맞나.

백=박정희 대통령 임기 중 핵을 가지려고 했던 때를 돌아보자. 당시는 미국에 닉슨 대통령이 등장해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가, 한국 안보는 한국이 책임져라'는 요구가 나올 때다. 그래서 우리도 굉장히 당황했고 한미동맹에도 심각한 균열이 갔다. 닉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패싱하면서 한미동맹이 극적으로 약화되는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다가는 동남아처럼 공산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했다.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당시 핵무장에 관심을 가졌고 핵 개발을 시도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NPT 질서를 지키는 것이 좋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핵무장을 하지 않으면서도 북한 핵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확장억제 개념이 나온다. 다만 미국에 의한 핵우산에 허점이나 빈틈이 보여 우리 안보가 위태로워진다면 핵은 가져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점과 실제로 핵을 개발하는 시점 사이를 시간적으로 좁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정도의 국가전략은 필요하다고 본다.

한=핵무기를 보유하려면 우라늄 농축시설과 재처리 시설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의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도 평화적 이용 목적일 때만 가능하다. 독일이나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미국이 이들 나라와 동맹을 맺고 '핵우산 등을 제공해 줄 테니까 핵무기를 만들지 말라'고 해서 안 만든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국가들도 미국이 전술 핵무기로 확장억제를 보장해 줄 테니까 핵무기를 만들지 마라 해서 안 만들었다. 냉전시대를 돌아보면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핵무기를 갖고 양국의 동맹국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핵무기는 두 나라만 가지고 동맹국들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 같은 경우는 탈냉전 후에 자기 힘으로 핵무기를 만든 경우다. 또 김 씨 세습·독재 정권을 정당화하고 정권안보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핵보유국 9개 나라 가운데 정권 안보를 위해서 핵무기를 만든 나라는 북한 뿐이다. 북한은 김 씨 세습 정권의 우월성이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아주 이례적인 경우다.

백승주 전 국회의원(전 국방부 차관). 이무성 객원기자
백승주 전 국회의원(전 국방부 차관). 이무성 객원기자

▶핵무기를 두고 비대칭전력의 대표적인 사례라고들 한다. 기존 재래식 무기와 비교해 핵무기는 어떤 위상을 갖는 무기인가.

백=핵무기는 살상 능력 측면에서 재래식 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도 가공할 위력을 갖고 있다. 지난 11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74발의 미사일을 쐈는데 사망자는 11명 정도였다. 미사일의 경우 직격에서 파괴하면서 어떤 파편을 가지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유발한다. 하지만 철골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으면 살상 능력을 발휘하지 못 한다. 보통 미사일이 떨어지면 불에 타 죽거나 건물이 무너지면서 다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핵무기는 어떠냐. 폭풍, 열 복사선, 핵 방사선, 전자기파(EMP) 등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피폭지역은 방사능으로 오염돼 수 십년 동안 버려진다. 1998년도에 CIA가 서울 용산구 상공 500m에서 핵폭탄이 터졌을 때를 가정해 피해를 추산한 적이 있다. 4.5km 반경 안에 있는 생명체는 폭발 즉시 모두 사망한다. 반경 10km까지도 사망자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당시 용산 주변 인구를 따져보면 약 62만 명 정도가 죽는 것으로 분석이 나왔다. 재래식 무기로는 이런 살상을 할 수가 없다.

한=히로시마에 15kt짜리 우라늄탄을 터뜨렸을 때 히로시마에 살던 15만 명이 다 죽었다. 그리고 수 십년 동안 히로시마에 아무도 살지 못 했다. 나가사키는 히로시마보다 적은 6만 명 정도가 살고 있었는데 다 죽었다. 1945년에 15k~20kt짜리 원자탄이 터졌을 때 그렇게 되는데 지금은 70년이 흘렀으니 성능이 얼마나 강해졌겠나. 앞서 얘기한 대로 용산 미군기지 위에서 북한이 핵폭탄을 터뜨리면 60만명에서 100만명이 죽는다는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노무현 정부)는 믿지 않으려고 했다. 다행히 당시 북한의 핵 사용 시 대책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시작이 됐고 정책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북한은 핵무기를 방어용이자 억제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완전히 공격용으로, 공세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무관심했다.

▶북한의 핵무기 관련 기술 수준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다.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했다는 의견도 나오다. 어디쯤 왔다고 보면 되나.

백=핵무기 체계의 완성이라는 용어를 살펴보면 먼저 핵탄두를 개발하는 하는 것이 첫째고 두 번째는 이 핵탄두를 전술적으로 운용하는데 필요한 딜리버리(delivery)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딜리버리 시스템은 미사일과 폭격기 두 가지 형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폭격기를 사용했는데 요즘은 거의 미사일을 통한다. 북한은 이미 6차례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핵탄두 개발에는 성공했다고 본다. 아울러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도 다양하게 갖췄다고 본다. 이미 북한은 지상발사대, 잠수함, 기차 등 다양한 발사방식을 보여줬다. 핵탄두를 다양한 딜리버리 시스템으로 운송하려면 핵탄두를 소형화해야 한다.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중량에 맞춰 핵탄두를 만드는 식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를 완성하기 위해 7차 핵실험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전술적으로 사용할 준비가 돼 있고 핵 강대국의 수준에 올라 있다 본다. 이미 북한은 지난 여섯 차례 핵 실험과 미사일의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전술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한=지난 1991년에 남북한 핵 통제 공동위원회 전략 수행 요원으로 회담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의 회담 당사자의 눈을 1년 정도 유심히 관찰했었다.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은 핵무기 안 만들겠다고 한반도 비핵화 운동 선언 합의를 하지만 그것은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훈련을 중지시키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그 후 93년 3월 북한은 NPT를 탈퇴했다. 일찍부터 북한은 핵개발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고 본다. 이후 전문가 입장에서 계속 관찰을 했는데 김정일 집권 당시에는 플루토늄탄을 완성했다. 두 번의 실험을 통해 일본의 나가사키에 투하했던 플루토늄탄을 완성을 했다. 우라늄 농축 시설은 북한이 김정일 집권 당시 파키스탄으로부터 도입을 다 했고 제네바 합의가 이행된 기간에도 비밀리 운영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우라늄탄을 만들 만한 능력도 갖췄다. 미국이 눈치를 채고 2002년 10월 북한을 향해 우라늄탄을 만들고 있지 않느냐고 압박하며 공개를 요구하자 바로 시인을 한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이제 우라늄탄 실험을 했다. 6차 핵실험은 수소탄 실험이었다. 북한은 핵무기 다중화에 성공은 했다. 다중화라고 하면 핵무기를 종류별도 다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그 다음 관심사가 소형화와 경량화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는 700kg부터 1t까지 무게를 실을 수 있지만 탄도미사일 같은 경우는 300kg에서 500kg 정도를 줄여야 한다. 북한은 이미 탄두의 소형화와 경량화를 이룬 것으로 본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참고한 소련은 1970년에 이미 스커드 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이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등이 미사일이 이미 성능을 확인했다.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 실제 작전에 활용할 수 있는 작전부대를 만들고 있다. 핵무기 기술과 관련해서 북한은 파키스탄보다 무기 숫자는 적지만 성능은 파키스탄보다 더 낫다고 본다.

한용섭 전 국방대학교 부총장. 이무성 객원기자
한용섭 전 국방대학교 부총장. 이무성 객원기자

▶최근 북한이 핵무력 사용 정책을 법제화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군 전술핵운용부대 훈련 지도에 나섰다.

한=지난달에 북한이 핵무력 정책 법제화를 했는데 그 내용 가운데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 발표를 하려고 하면 적어도 5~6년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법제화 내용을 읽어보니 북한이 준비를 많이 했더라. 인도, 파키스탄, 중국의 핵 정책을 모방해 북한의 실정에 맞게 정리를 한 내용이었다. 국내 일부 전문가는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대응 차원의 반응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2019년부터 계속 미사일 실험을 했지 않았느냐. 그와 동시에 전략군을 만들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핵무력 사용 정책 법제화와 관련한 북한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김정은은 '이제 우리(북한)는 핵무기를 가진 성숙하고 책임 있는 핵 보유국이다'라는 위상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미국을 포함해 서방에선 김정은 위원장이 매우 비이성적인 존재라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김정은은 아무도 손대지 못 하는 미치광이다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핵무력 사용 정책 법제화를 공개함으로써 정상 국가와 정상 지도자 이미지를 확보하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한 선제타격 얘기가 나오는데 북한은 한국이 선제타격을 하기 전에 한국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핵정책을 구체적으로 공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엔 핵 능력만 있었지 이를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체계를 공개한 적이 없다. 이번에 그 공백을 메운 것으로 보여진다.

백=법제화 내용을 보면 일반론적으로 개념을 설명하고 뒤에 특정 상황 같은 것을 열거해 놨다. 내용면에서는 다른 나라와 비슷한데 특이한 점은 '작전상 주도권을 확보가 필요할 경우'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건 해석하기에 따라서 시도 때도 없이 언제든지 김정은이 마음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매우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수도가 타격을 받았다거나 민간인 피해가 컸다는 등의 이유도 아니고 전황을 바꾸기 위해 쓰겠다는 의중을 밝힌 것인데 우려스럽다. 북한은 전쟁 시나리오, 작전계획 등을 다 검증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관심했다.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우리에겐 현무 미사일이 있다'는 식으로 과시도 하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우리도 미사일을 쐈는데 적절하지 않은 대응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타이밍을 봐서 해야 할 일이다. 전략적인 목표를 가지고 우리 무기를 선보여야 한다. 그냥 분풀이식은 안 된다.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을 위협하는 상황을 궁극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해 억지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술핵 배치는 어떤가.

백=전통적으로 보면 핵무기의 살상 능력이 가지는 공포의 균형을 때문에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설명은 있다. 우리가 핵을 가지고 있으면 공포의 균형이 이뤄져 북한이 핵을 사용할 엄두를 못 낼 것이라는 생각은 상식적이다. 구체적으로 핵우산에 대한 생각을 해야 된다. 확장억제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미국은 동맹국이 핵무기 공격을 받지 않고 재래식 공격을 받더라도 갖고 있는 핵무기를 비롯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미국의 전술 핵무기 재배치는 미국이 동의를 해줘야 가능하다. 지금 전술 핵무기를 재반입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사실은 우리 대통령이 국민이 필요할 때 미국의 핵 사용 권한을 가진 미국이 한국 입장을 들어주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나 싶다. 한미 대통령 간의 핫라인을 통해 이런 부분이 더 시급하게 다뤄져야 되지 않나 싶다.

한=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너무 엄중해지니 현 정부에선 이제 확장억제를 활용하려는 것 같다. 전 정부에서는 확장억제 위한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선 이후에야 미국의 전략 폭격기도 보여주고 했다. 쇼 하는 전시 효과는 있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미국이 확정억제를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를, 어떤 시기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보여주지 않고 그냥 믿으라고만 한다. 말로 약속만 해줬는데 그거 가지고는 부족하다. 그래서 한미동맹도 지금 이제 확장억제력을 제도화해야 된다.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해야 된다. 독일 같은 경우는 소련이 독일의 핵무장을 극도로 걱정했다. 그래서 미국에 서독이 핵무장하는 것을 꼭 막아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미국은 독일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해 이중 키 만들고 미국과 독일이 열쇠 하나씩 가지자고 하고 실행했다. 우리의 경우 북한은 핵무기를 가졌고 우리는 못 가졌는데 미국은 우리가 우라늄 농축하는 것도 못 하게 한다. 말로만 하는 확정억제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일식 확장억제를 상정할 수 있는데 굉장히 힘들다. 사드배치 때 국내 갈등 양상을 생각해 보라. 전술핵 들어오는 과정에서 자칫 국내 갈등을 넘어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 자중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현실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 세계적인 정세가 좀 안정이 됐을 때 전술핵무기 재배치 등 여러 가지 논의를 더 확대할 수 있다. 그리고 전술핵이 한반도에 다시 배치되더라도 그 방식은 NCND(핵무기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대응)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재배치가 돼도 물리적으로 큰 부대가 필요하지도 않다. 도입 논의 전체를 일급비밀로 취급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국가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갖는다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우리 기술로 개발해 보유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백=독자적 핵무장을 하려면 우라늄 고농축 시설 풀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가져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72년 9월 한국의 자체적인 국내 핵연료개발계획, 즉 핵무기 개발계획에 나선다. 캐나다에서 수입한 중수로(지금은 월성 1호기)에서 천연우라늄 빼내고, 재처리 시설은 프랑스에서 도입해 플루토늄 탄을 1980년쯤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중수로 못 들여왔다. 프랑스 재처리 시설도 못 들어왔다. 된 것이 없다. 평화적인 농축과 재처리도 못 하는 상황에서 그때 미국의 의심을 샀다. 고려해야 할 요소다. 미국의 의심을 사면 재료도 마련할 수 없다. 핵과학자들을 만나보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가 순도 95% 이상의 플루토늄, 두 번째는 개발기술이다. 기술은 우리가 보유하고 있다. 기술은 있는데 원료를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려면 무리를 좀 해야 한다. 결국은 정치지도자의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국제 여건이 허락되느냐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대담 중인 백승주 전 국회의원(왼쪽)과 한용섭 전 국방대학교 부총장. 이무성 객원기자
대담 중인 백승주 전 국회의원(왼쪽)과 한용섭 전 국방대학교 부총장. 이무성 객원기자

▶주한미군의 전술핵 배치를 포함한 남한의 핵보유가 동북아 정세에 불안정성을 높이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백=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남한에 전술 핵무기가 들어와 있었던 시기가 60년부터 91년 사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 비추면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대한민국이 핵을 갖는다 해서 동북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핵 도미노에 대한 우려는 나올 것으로 본다. 한국이 핵무기를 가지면 당장 일본과 대만이 갖게 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핵무장할 경우 한국과 미국 관계에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핵 도미노도 일어날 수 있고 핵 강대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미래표적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좀 신중해야 하지 않나 싶다.

▶최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기 전에도 정치권에선 핵무장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백=기본적으로 군통수권자는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학자들이라든지 정치인들이 핵보유와 관련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자기 소신껏 이야기할 수 있다. 다만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만 신중하면 된다. 정치인들이야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도 할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그것이 건강한 모습이다. 대통령은 이익과 비용을 냉정하게 보고 정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한=핵무장 여론은 70년대 한 번 일어났다가 사그라지고 지금 두 번째로 일어나고 있다. 핵정책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하고 난 뒤부터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찬성이 66% 정도, 이번에는 71%까지 올라갔다. 어떤 때는 50%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대략 50%에서 70% 사이에서 독자적인 핵무장 주장이 나온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여론이다. 일본 같은 경우 5%밖에 안 된다. 미국이 확장억제를 공언한 마당에 우리가 핵무장에 나서면 한미 간에 동맹이 완전 종결될 우려가 있다. 지금은 미국의 확장억제 구상을 최대한 활용하고 다른 기회를 봐야 한다. 나아가 우리도 미국을 상대로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내 핵무장 여론이 이렇게 높은데도 핵무장을 하지 않고 있으니 미국도 말로만 확장억제를 할 게 아니라 가시적인 조치를 내놓으라고 압박해야 한다. 또 핵 보유국이 자기들만 핵을 가지면서 비보유국에 약속한 것이 있다. 하나는 핵 보유국은 비핵보유국에게 핵 공격 위협을 받으면 모든 수단을 써서 핵보유국이 일체 단결해 안보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소극적 안전보장'인데 핵 보유국은 비핵보유국인 NPT 회원국에 대해 절대로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약속을 그대로 지키라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국내 여론에 떠밀려 핵무기를 그냥 숨어서 만들다가 들키면 제재만 당하고 북한에 핵 개발 명분까지 제공하게 된다. 정말 상황이 복잡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적 상황이 좀 안정이 되고 NPT가 좀 안정될 때까지는 핵무기 비확산 쪽으로 가야 한다.

▶역대로 북한에 끌려가는 듯한 남북관계를 많이 봐서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주도권을 잡기를 희망하고 있고 그 계기가 핵무장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백=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는 게 아니다. 그건 지도자의 자질과 의지의 문제다. 역대 정부 가운데 남북관계를 주도했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정도다. 남북관계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고 주도했다. 북한에 가장 심하게 끌려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극단적인 예가 있다. 2018년 9월 18일부터 20일 사이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런데 사흘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북-미 사이의 문제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왜 자꾸 끼어드는지 모르겠다. 각하와 얘기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북한은 철저하게 미국을 상대하려고 한다. 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은 아니다. 우리 대통령이 전략적인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에서 목함지뢰 사건이 터졌는데 당시 북한이 대화하자고 사정을 했고 7가지 합의를 했다. 물론 북한이 지키지는 않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다친 병사한테 사과하는 성과도 있있다. 북한에 대해 자꾸 입장을 들어주는 것이 없어야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것이다. 북한과 자주 만나고 당당하게 북한을 대해야 주도권이 생긴다.

한=핵무기하고 남북관계 주도권은 관계가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이유는 한반도 상황을 북미게임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NPT를 탈퇴한 이유는 미국과 마주앉기 위해서다. 그때부터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염두에 뒀다. 북한이 NPT 탈퇴하고 미국의 국무부 관계자가 방한해 대응을 논의할 때다. 당시 정부에서는 북미회담으로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미국이 고민을 하더니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고, 그 뒤 북미는 세 차례 정도 추가 만남을 가졌다. 이 후 남북관계는 주도권을 빼앗겼다. 우리는 동문서답을 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우리는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하면서 북한에는 '그러면 너희만 손해다. 소련이 핵무기가 모자라서 무너졌느냐'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나름 공작이 필요하다. 겉으로는 담대한 구상 등을 밝히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되 비밀스럽게는 북한 자유화 운동을 공작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문제 등 약한 고리를 건드려야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그거 없으면 주도권 잡을 수 없다.

백=맞다. 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는 없다. 북한이 이미 가진 것을 우리가 가진다고 무슨 협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겠나. 북한이 가지지 못한 것, 그러니까 인권, 자유, 외부사조 유입 등이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 핵 문제를 제1과제로 다뤄야 한다. 지금처럼 곁다리로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 주도권은 북한이 싫어하는 것, 북한이 약한 것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것이 인권이고 자유다.

▶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나.

한=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내부의 위기를 외부로 돌리려고 할 때다. 아울러 전략 핵무기는 사용하기 힘들지만 전술 핵무기는 사용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를 수도 있다. 전선돌파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노련하지 않고 혈기왕성하기 때문에 돌발적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핵무장과 관련 일반인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한=우리가 결심만 하면 바로 핵무장이 되는 것처럼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제적인 제약조건도 만만치 않다. 일반국민들은 결심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쉽게 생각한다. 그게 정치인들이 너무 쉽게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다. 국제적 ,외교적 문제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아쉬운 것은 핵무기와 관련한 사안은 과학적인 영역, 쉽게 말해 이과적 영역인데 의사 결정은 문과가 한다. 여기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긴다. 이과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설득하지 못 하고 문과는 과학적인 사안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회=이호준 서울뉴스부장

정리=유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