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11>몬티의 ‘차르다시’

입력 2022-10-17 11:12:45

비토리오 몬티
비토리오 몬티
서영처 계명대 교수
서영처 계명대 교수

차르다시(csardas)는 이탈리아의 음악가 비토리오 몬티(1868~1922)가 작곡한 집시풍의 헝가리 민속 무곡이다.

집시음악은 떠돌아다니는 민족답게 특유의 자유롭고 낭만적인 열정과 화려한 기교, 즉흥성으로 클래식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집시의 음악들은 대체로 인생의 비련이나 절망을 비극적으로 노래하거나 경쾌하고 빠른 리듬으로 기쁨과 희열을 표현한다. 집시풍의 음악을 활용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리스트의 '헝가리언 랩소디'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 라벨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치칸' 등을 들 수 있다.

차르다시는 바이올린의 느리고 무거운 서주로 시작하여 점차 빠르고 정열적인 연주로 이어진다. 집시풍의 다른 음악과 마찬가지로 느리고 애수 어린 선율과 화려한 기교, 자유로운 루바토, 역동적인 싱커페이션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들려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집시풍의 음악을 편안하고 즐겁게 받아들인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거리의 악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한데 이들의 음악이 귀에 익숙한 것이거나 집시풍일 때 사람들이 더 많이 호응하고 동전과 지폐가 더 많이 담기는 것 같았다. 온갖 무시와 천대, 가난을 견뎌온 집시들의 음악이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어 호소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차르다시도 연주 효과가 좋아 거리의 악사들이 애호하는 곡이다. 몇 년 전 밀라노 시내에서 여행비 내지는 용돈을 벌기 위해 나선 두 명의 여학생이 연주하는 차르다시를 흥미롭게 들었다.

사실 브람스와 리스트의 작품은 피아노곡이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집시에게 덩치 크고 무거운 피아노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휴대하기 편리한 바이올린이나 기타, 캐스터네츠, 탬버린 같은 악기가 집시들의 진짜 악기라고 할 수 있다. 또 발구르기, 손뼉치기가 집시들의 진정한 연주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집시의 비애는 살롱에 자리 잡은 피아노보다는 그들이 직접 만든 바이올린, 피들의 선율에 담는 쪽이 더 적절해 보인다.

몬티는 많은 곡을 작곡했지만 거의 연주되지 않고 차르다시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단 한 편의 시, 단 한 곡의 명곡을 남긴다는 것도 예술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것이다.

지난달 달서아트센터에서 레이첸-선우예권의 듀오 리사이틀이 열렸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앙코르곡으로 헝가리 무곡 두 곡과 몬티의 차르다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했다. 클래식 음악은 고급한 유희이기에 관객은 높은 예술성과 절제를 기대한다. 수려한 외모를 갖춘 젊은 연주자의 자신감이 돋보였지만, 앙코르에 이르자 무협 영화의 협객이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과장되고 요란한 표정과 제스처가 이어졌다. 흥겨운 춤곡이었고 관객에 대한 서비스라고 하겠지만 경박하게 느껴졌다.

세계 유수의 콩쿠르를 석권한 신예들이라면 더 겸손해야 하고 음악의 영혼과 정신성을 추구해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그래야만 이들도 샛별로 그치지 않고 세월이 흐르면서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