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스트레스 원인은 무엇인가? 아마도 이 질문에 여러 답이 나올 테지만 얼마 전 알게 된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기억난다, 그가 말한 답은 바로 '풀지 못한 욕구'라는 것이다. 이 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며 제한된 시간과 물질들 속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되고, 그 결과치를 마치 인생 성적표인 것처럼 여기며, 때로는 남들과 비교하게 된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풀지 못한 욕구'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이러한 욕구는 경험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 정화될 수 있다지만 여전히 가장 쉬운 방법은 독서라고 많은 학자는 입을 모은다. 하지만 나는 오늘 새로운 시각에서 책을 말해보고자 한다.
"사람들은 왜 유자서(有字書)만 읽고 무자서(無字書)는 읽지 않는가?"
-채근담 외편-
보통 활자로만 된 글만 읽고, 글자로 보이지 않는 글은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자서란 자연이나 삶,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수 있다. 즉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는 삶의 지혜가 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교훈이나 타산지석으로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일 수 있다.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는 삶의 지혜
며칠 전 만난 선배에게서 귀한 무자서 한편을 접할 수 있었다. 어린 손자를 보고 싶었던 선배는 오랜만에 아들 집을 방문하였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아들의 생활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터였지만, 손주가 너무 보고 싶어 집에 들어섰다. 며느리는 저녁을 차리고 있었고, 손주는 할배에게 자랑스러운 듯 가지고 놀던 퍼즐을 꺼내 들었다.
십여 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꽃병 모양의 퍼즐이 완성되어 갈 무렵, 손주는 흐뭇한 미소로 자랑하듯이 말한다. "나 똑똑하지, 꽃병 다 맞추었어요" 퍼즐을 보자 선배의 눈시울은 갑자기 뜨거워졌다. 몇 해 전, 옆집에서 얻었다는 퍼즐, 마지막 두 조각이 없었음에도 손주는 해맑게 웃으면서 자랑을 한 것이었다. "할배가 새 퍼즐 사줄게"라고 말하자, 네 살 손주는 이렇게 대답한다.
"왜 퍼즐이 꼭 다 맞아야만 하는가요? 이미 꽃병은 완성되어 보이는데요"
이 무자서는 작년 한 해 내가 읽었던 수많은 베스트셀러보다 더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풀지 못했던 욕구'가 가슴 속에서 하나둘씩 씻겨 내려감을 느낀다. 일반화라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더 많음을 알 수 있고,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시간들도, 귀한 경험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보는 법이고, 경험한 만큼만 진리로 인정하는 법이다. 그러기에 나이가 들수록 배움에 유연하지 못하고 딱딱한 고체화되어가는 사고를 자신의 철학이고 진리라고 여기며 홀로 고립되어가기도 한다.
손주의 말처럼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아는 것이 바로 진리이고 현명한 삶일 수 있다. 얼마 전, 접촉사고로 살짝 색이 벗겨진 내 차를 볼 때마다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끼거나, 본질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벗겨진 칠에만 관심을 두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풀지 못한 욕구, 즉 빨리 수리하거나 새 차를 사고 싶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현재를 받아들이고 이미 가지고 있는 부분에 감사하고 더 가치를 둔다면 차를 볼 때마다 나의 시선은 어쩌면 다른 곳에 머무를 수도 있었을 듯하다.
어떤 삶이 바람직하냐고 물어본다면 이 세상 생김이 모두 다르듯이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세상을 당당하게 살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쉽게 답할 수 있을지 모른다. 평소 좋아하는 임제선사의 수주작처 입처개진(隨主作處 立處皆眞)이라는 말을 답으로 적어본다.
"어느 곳이든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지금 머무는 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다"라는 말, 과연 내가 주인으로 삶을 살아가는가에 대한 화두로 좁혀지면 답하기가 쉬워진다. 주인은 흥할 때도 망할 때도 모두 책임지고 그 과정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운이 약해진다 느껴지더라도 끈을 놓을 수가 없기에 더욱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삶의 주인이 아닌 자들은 변명과 회피로 이 공간을 대신한다.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 풀지 못한 욕구는 스트레스가 되어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깊어가는 가을 하늘, 어느 구름 한 조각도 고정되지 않았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움직이는 구름에 대하여 우리는 무어라 말하지 않는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 인생의 퍼즐도 꼭 맞지 않더라도 웃으며 가을 하늘을 즐길 줄 안다면, 오늘 하루 신선이 되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천고마비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이번 주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다면 무자서를 찾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최경규 심리상담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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