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혜정 동부도서관 사서
공공도서관 사서인 나의 직업 특성상 한달에 두 번꼴로 주말 자료실 근무를 한다. 특히 어린이 자료실의 경우, 주말엔 어린 꼬마 손님뿐만 아니라 온 가족들이 도서관으로 출동해 그야말로 북적북적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매주 찾아오는 반가운 단골 꼬마 손님과는 빌려 간 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학부모님들과는 자녀들의 독서에 대한 고충과 학업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는 등 정겨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자녀 교육과 독서는 나의 주된 관심사이자 큰 숙제거리이다.
첫째 아이가 그림책에서 글밥 많은 이야기책으로 넘어갈 때쯤 도통 진전이 없다고 느낄 때 어린이 자료실 단골 이용자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해결책을 찾았다. 본인은 아이가 고학년이 된 지금도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또한 읽어주기도 하노라고.
'아!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그림책을 많이 읽어줬으니 학년이 올라가면 자연히 글밥 많은 책도 무리 없이 읽어내겠지 하고 내버려둔 게 잘못이었다. 그림도 많고 글밥도 적은 그림책에 익숙했던 아이에게 긴 이야기책에 익숙해지기까지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날부터 긴 글로 된 책들도 직접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책 중 하나가 '그 여름의 덤더디'이다.
그 여름의 덤더디에는 어느 산골 탁이라는 소년의 가족과 늙고 행동이 느린 탓에 이름 붙여진 덤더디라는 소가 나온다.
1950년 여름 평화롭던 산골마을에 6․25전쟁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퍼지고 급기야 탁이네 가족도 당장 먹을 양식과 옷가지를 챙기며 피난길에 나선다. 그러나 전쟁은 좀처럼 끝나지 않고 급기야 사람들이 먹을 식량마저 부족한 상태가 되자 탁이 아버지는 긴 고민 끝에 우선 사람부터 살고 봐야 한다며 평생 가족처럼 지내던 덤더디를 잡기로 한다. 탁이는 "안 돼! 절대 안 돼!"라며 저항한다.
그날 저녁,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굶주린 배를 채웠지만 탁이와 가족들은 한 점의 고기도 먹을 수 없다. 탁이는 꼬박 사흘을 앓아 누우며, 꿈속에서 덤더디를 만난다.
책을 읽어 내려 갈수록 내 코끝은 찡해오고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한다. 아이의 붉어진 눈시울에서도 눈물이 뚝뚝… 조용한 침묵속에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느낌….
나도 내 아이도 겪어 보지 않았지만 전쟁의 참상과 무서움,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 그 피해는 항상 낮은 곳을 향한다. 힘없고 약한 존재들에게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래본다.
이날 이후로도 엄마의 책읽기는 계속 되었고, 고학년이 된 아이는 이제 긴글도 무리없이 즐길 줄 안다. 아이가 책읽기에 어려움을 느낄 때 아이와 호흡을 맞춰 가며 독서여행을 떠나 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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