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만 명의 젊은 목숨을 독일군의 제물로 바칠 수는 없소. 우리는 항전보다 더 공세적인 철수작전을 펼 것이오."
영국 해군 버트람 램지 장군이 처칠에게 철수작전(다이나모작전) 계획을 밝힌다. 비장하고 결기에 차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영국군 20여 만명을 비롯하여 벨기에 및 프랑스군 등 33만 8천여 명의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 연안의 좁은 당케르크로 집결했다. 마땅한 은폐물이 없는데다 독일군의 공습과 좁혀오는 포위망을 벗어나기 어려운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1940년 5월로 들어서면서 독일의 서부유럽 공세가 더 거세지기 시작한다. 독일군은 프랑스와 벨기에의 국경지대를 돌파하고 영국 해협을 향해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기동력을 앞세워 폴란드를 장악한 히틀러는 노르웨이와 프랑스를 침공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서유럽을 넘어 세계를 점령하겠다는 야심찬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영국의 목을 조르려는 치밀한 계획이었다.
히틀러의 대서부 공세가 시작되던 1940년 5월 10일, 영국에선 정치 행정적 경험이 풍부한 처칠이 66세의 나이로 수상직에 오른다. 5월 하순으로 접어들자 당케르크 포위망은 더 좁혀들었다. 독일군의 공중 폭격도 격렬해졌다.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수고와 눈물과 땀 뿐입니다' 고 한 그의 연설은 전쟁의 공포에 매몰된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이어 당케르크 철수작전을 공개하자 전국민들은 너도 나도 국가를 위하여 작은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대서양 위를 떠다니는 화물선과 석탄선, 어선은 물론 유람선과 요트 등 860여척의 작은 배들까지 모두 당케르크로 모여들었다. 각 지역의 병사들을 구축함으로 이동시키는데 민과 군이 하나가 된 기적 같은 철수 작전이 진행되었다. 5월 26일부터 9일 동안 진행된 당케르크 철수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철수부대를 엄호하면서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했던 프랑스군 2개 사단은 결국 침략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수십만의 인명을 무사히 탈출시켰지만 수많은 화포와 중장비 등 군수물자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철수 작전의 성공을 위해 끝까지 전장을 지켜 희생된 군인들도 적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전쟁사를 이해할 때 공세에 비하여 철수작전은 실패의 이미지를 띤다. 그러나 당케르크의 철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세기적인 철수작전으로 수십만의 인명을 무사히 구출해냈다. 그래서 당케르크 철수작전은 전쟁사적인 인식을 새롭게 한 특별한 작전으로 평가된다. 소중한 인명을 구출하기 위해 민·군의 결집과 희생을 감수한 것이 곧 미래의 정신전력으로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함락한 독일은 득의만만하여 영국을 공격 목표로 삼는다. 반면에 당케르크 철수 이후 군비가 미흡한 영국군은 불리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사지에서 생존한 병력과 국민적 지지는 무엇보다 강한 전투력을 대신해 주었다. 처칠은 단호했다.
'유럽이 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 최후까지 결전한다. 바다에서 싸우고 공중에서 싸우며 상륙지점에서 싸워 영국을 지킬 것이다' 라고 하면서 결전의 의지와 용기를 보여주며 국민을 독려했다.
그후 9월, 히틀러는 결국 대영전투의 실패를 인정한다. 전쟁과 함께 긴 여름을 보내고 가을 문턱에서 얻어낸 처칠의 승리였다. 그 열매는 두말할 나위 없이 당케르크 철수작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처칠은 평화를 열망하는 영국 국민과 세계 인류 앞에서 자신의 검지와 중지를 치켜들고 V자 포즈를 취했다. 승리의 기쁨을 그렇게 웅변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손가락 싸인에 익숙하다. 엄지척, OK, 하트, 승리의 표징 V..... 그중에서 엄지와 중지를 세워 만드는 V자 시니그처는 처칠을 대표하는 것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 되고 있다.
지금 전쟁의 공포 속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는 러시아를 향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처칠의 연설을 원용하여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변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싸울 것이다'라고 결기를 다지고 있다. 승리를 위하여 하나가 되자는 외침이었다.
승리는 삶을 능가하는 희생, 집단의 단결과 역경을 극복해내는 강인한 정신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해야 생존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가 있다. 당케르크 철수작전은 수많은 작은 배들까지 지지해준 민간의 결집력, 포기 하지 않은 항전의식 그리고 국가 지도자의 결연한 의지, 이런 것들의 집합체 위에서 얻어낸 기적적인 승리가 아니던가.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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