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대한민국은 좌파의 진지전(陣地戰)에 잠식당하고 있나

입력 2022-10-03 19:51:24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 혁명은 마르크스의 이론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계급 대립이라는 자체 모순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결정론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폭력적 자본 축적 단계를 벗어나 다수의 중간 계층이 형성되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은 관리 가능하게 완화되고 혁명의 전망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정세 변화에 대응해 그람시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맞는 공산 혁명의 방법론을 제시했다. '진지전'(陣地戰·War of Position)이다. 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은 정면 대결을 말하는 '기동전'(機動戰·War of Maneuver)의 상대 개념으로, 교육·언론·학계·예술·문화·시민단체 등 사회 전 영역에서 진지를 구축해 우파 헤게모니를 밀어내고 좌파 대항(對抗) 헤게모니를 전파하는 정치·문화적 참호전을 말한다. 좌파에게 '문화 투쟁'은 본질적으로 '정치 투쟁'이다. 이런 '이념 전쟁'을 통해 좌파 헤게모니의 우세를 점하고 결정적인 때가 오면 참호에서 뛰쳐나와 '기동전'으로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이 그람시의 혁명론이다.

이런 전략이 성공한 예는 아직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기동전으로 발전할지는 미지수지만 '진지전'이 펼쳐지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MBC의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발언' 보도는 그 불안감을 기우로 치부하지 못하게 한다. 전문가들도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판별하지 못하는데 '바이든'이라고 특정했고, '국회' 앞에 '(미국)'이라는 각인 표식을 달았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흠집 내려는 기획으로 의심된다. 이를 그람시적 의미를 적용해 해석하자면 '진지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좌파 헤게모니 전파와 우파 대통령의 헤게모니 잠식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쨌든 윤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다. '취임 후 최저'로 나온 조사도 있다. 이대로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반전이 없다면 다음 총선 전망도 낙관하기 어렵다. 이 우려가 현실이 되면 윤석열 정부는 임기 종료 때까지 '식물'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MBC 진지전'은 성공하는 것이다.

MBC는 이미 성공의 경험이 있다. 공중파를 이용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괴담' 유포이다. 이에 현혹된 우중(愚衆)은 촛불로 거리를 메웠다. 그리고 대선에서 무려 500만 표 차이로 이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만에 대국민 사죄를 해야 했다. 이 '성공'의 추억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허위 사실이 있지만 공공성을 근거로 한 보도'라는 논리로 MBC를 무죄 방면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악질 친일파' 'A급 민족 반역자' 등으로 규정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도 면죄부를 줬다. 사법부도 좌파 법 기술자들이 준동(蠢動)하는 진지전 참호가 되고 있는 것인가?

이뿐만 아니다. 역사학계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학비(學匪)들의 참호가 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미래 세대의 역사관과 가치관을 오염시키려는 좌편향 교사들의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노동계에서는 "한미 동맹 해체" "한미 전쟁 연습 중단"이란 구호가 나온다. 문화·예술계도 다르지 않다.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물결이 넘실댄다는 소리는 예전에 나왔다. 이를 저지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