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나는 매일 행복하다

입력 2022-09-27 18:31:57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나는 매일 행복하다. 새벽에 해가 뜨는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 하루를 시작하기에 행복하다. 그 하늘은 매일매일 너무나도 신비한 색깔로 바뀐다. 아니 매일 변하기에, 매일 새롭기에 아름답다. 어제의 하늘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내일의 하늘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오로지 오늘의 하늘이다. 두세 시부터 깨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검은 하늘이 조금씩 밝아 오면서 보이는 형형색색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화가가 그린 그림이야 갖다 댈 수도 없다. 미인이니 미남이니 하는 얼굴도 비교가 안 된다. 나무나 풀이나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늘에 비교할 수 없다. 그 깊이나 넓이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신비한 자연 자체이기에 아름답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공동묘지를 지나 개와 닭이 기다리는 밭으로 간다. 매일 새벽, 그리고 하루 서너 번 보며 모이를 주고 말을 걸고 산책도 하지만 언제나 행복하다. 개와 닭이 나를 온몸으로 반기기 때문이다. 간밤에 잘 잤느냐는 인사부터 이런저런 잔소리를 서로 해 댄다. 작물에게는 말을 걸지 않지만 속으로는 마찬가지로 인사와 잔소리를 한다. 하늘처럼 변화무쌍하지는 않지만 동물도, 식물도 하루가 다르다. 그리고 하루. 아내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행복하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행복하지만, 만나지 않아도 행복하다. 그러다 해가 지면 잔다. 개도, 닭도, 작물도 다 잔다. 24시간 틀어 놓는 에프엠 음악 소리뿐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공동묘지 길을 열 번 이상을 다니며 죽음을 생각한다. 오늘 밤에 죽어도 좋다. 그래서 나는 매일 행복하다.

그러나 평생, 매일 행복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행복하기커녕 매일매일 불행했다. 1999년. 세기말. 나도, 세상도 끝이 날 것 같았다. 도시 고층 아파트 생활에 지치고 세상도 기후변화로 지쳐 곧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시골에 들어왔다. 다행히도 아파트 전셋돈으로 밭과 집을 살 수 있었다. 우리 국토 가운데 산지를 제외한 땅을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1천여㎡라서 2천㎡가량의 밭, 우리 식구가 먹는 야채나 과일을 유기농법으로 지어 자급자족하기에 적당한 넓이다. 그리고 1인당 16㎡를 4명의 가족이 쓴다고 66㎡의 집. 직장에서 걸어서 한 시간, 자전거로 30분. 버스도, 자가용도 필요 없다. 23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주경야독으로 살아서 행복하다.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은 당음이다. 당나라의 음. 음이란 시다. 두보나 이백의 시다. 신라 때 이곳에서 당시를 읽었는지 모른다. 23년 전 당시를 공부할 때 이 마을 앞을 지나며 동네 이름을 보고 바로 땅과 집을 샀다. 신라 이전에는 압독이나 압량이라는 작은 나라였다. 신라어로는 노루들이라고 했다는데 지금도 고라니가 많아 밭이나 공동묘지에서 자주 만난다. 내 집과 밭 사이 공동묘지가 있어서 좋다. 그곳을 밀어 아파트나 물류 창고를 지을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리고 밭 앞에 큰 못이 있어서 좋다. 최근 물류 창고가 너무 많이 들어서 추해졌지만 본래는 너무 아름다웠다. 집에서 직장 가는 길도 원래는 조용한 흙길이었는데, 지금은 인도가 없어 걷기에도 자전거 타기에도 너무 위험한 아스팔트길이 되어 나의 행복을 막는 불행이다.

나는 자유-자치-자연이라는 세 글자를 좋아해 삼자주의라고 한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여 자치하는 사회를 만들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외부적인 권위나 기성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신의 개성대로 사는 자유로운 인간이 먼저이고, 타율의 권력이나 억압에 지배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이웃과 함께 사는 사회를 형성하며, 자연을 파괴하거나 훼손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소박하게 산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소유해야 할 1인당 땅 1천㎡와 16㎡의 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소박한 최소한의 부가 있어서 행복하다. 그 한쪽에는 두 그루 느티나무 사이를 폐목으로 연결한 트리하우스, 동네 폐자재로 지은 아틀리에나 황토 서재도 있다. 모두 내가 지은 것들이다. 그렇게 지난 23년을 살아왔다. 앞으로 얼마 더 살지 모르지만 마찬가지 삼자주의로 살 것이기에 나는 매일 행복하다. 오늘 해가 지면 자서 행복하듯, 오늘 삶이 끝나도 행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