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화의 온고지신] 코리아 인 코리아

입력 2022-09-22 13:30:00 수정 2022-09-22 17:54:58

직접 체험하는 편력의 학문, 통찰에 이르는 중요 방법론
한류 본격화 후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심 퇴보 아쉬워

이인화 전 이화여대 교수,소설가
이인화 전 이화여대 교수,소설가

로마인들은 학문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이 쓴 책을 꼼꼼히 읽어서 깨닫는 코멘타토르(주석자)의 학문, 즉 서책의 학문과 자기가 직접 가서 듣고 본 뒤에 깨닫는 비아토르(여행자)의 학문, 즉 편력의 학문이다.

여행자 비아토르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진리의 불멸함과 삶의 무상함을 체험하고 발바닥의 성찰을 거듭한다. 가는 곳마다 갖가지 인생의 숱한 근심을 듣고 보면서, 군인에게 핍박받고 도둑에게 억류되면서, 하루는 제왕의 빈객으로 지내고 또 하루는 상갓집 거지로 지내면서, 살아 있는 세상을 배우는 것이다.

중세에 이르러 이런 편력의 학문은 이슬람권에서 크게 개화했다. 이슬람 상인들의 통상로를 따라 확산된 소위 '제국만유(諸國漫遊)의 학문'이었다. 유럽에서부터 통일신라까지를 망라한 『제국지』(844)의 이븐 코르다베, 『장미의 낙원』(1254)을 쓴 무스리 알 딘 사아디, 장장 12만 킬로미터를 답사하고 불멸의 여행기 『리후라』(1355)를 남긴 이븐 바투타 등이 면면히 이어졌다.

근대에 들어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에서 '한 곳에 사흘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되며, 다음의 숙소는 그 이전의 숙소보다 최소 1마일 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그려내었다. 여행을 통해 한 사람의 전인적 인간, 교양인의 배움이 완성된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근대 학문이 전문화되고 직업화되면서 시대의 대세는 변해갔다. 점차 서책의 학문만이 학문으로 존중되고 편력의 학문은 하는 일 없이 놀러 다니는 일탈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텍스트들을 암기하고 여러 곳을 다니며 토론하고 종횡무진 의견을 전개하던 편력 시대의 학자들은 아마추어로 치부되었다.

편력의 학문은 시대를 초월하여 진정한 배움과 통찰에 이르는 중요한 방법론이다. 실험실에서의 가설과 관찰은 불충분하다. 연구실의 독서는 현지답사로 이어져야 하며 체험과 명상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것은 오래 편력의 학문을 갈고 닦아 단번에 대상의 본질을 통찰하는 현자들의 모습에서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지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영국인들은 경애의 마음을 담아 '글로브 트로터(Globe-trotter)'라고 불렀다. 글로브 트로터란 수많은 국외 여행을 통해 높은 문화 감각을 가진 세계 여행가를 뜻하는 말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89세에 이르러 해외여행을 중단하기 전까지 42번의 세계 일주를 했다. 100개 이상의 국가를 여행했고 150번 이상 영연방 국가들을 순방했다.

물론 국빈으로 초대된 여왕의 여행이 전형적인 비아토르의 여행은 아니다. 여왕이었기에 항상 좋은 자리에 가고 좋은 음식을 먹었다. 모든 장소가 예식으로 포장되었고 모든 행동이 의전으로 규격화되었다.

그러나 여왕의 여행은 한때 54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과 저주가 높아지는 세계로의 여행이었다. 여왕으로 즉위하던 1952년에도 케냐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 9만 명이 사살되거나 다치고 16만여 명이 투옥되었다. 아일랜드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이 무장 항쟁으로 계속 피를 흘렸다. 평범한 사람은 감당할 수 없을 고뇌와 절망을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연방의 유대와 영국의 품격을 지켜가야 했던 여행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왕은 이사벨라 버드 비숍, 마리안 노스, 메이 셀던 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여행가들을 깊이 사숙했다. 글로브 트로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었던 이 걸출한 여성들은 편지를 받는 주소지가 늘 외국의 어느 호텔이었다. 그들은 여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19세기 영국 사회를 박차고 나가 지구 곳곳을 여행하면서 강렬한 데카당스 위에 자기만의 공화국을 세웠다.

여왕은 특히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을 좋아했다. 이 책은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이었던 저자가 1894년 2월부터 4년 동안 4차례에 걸쳐 한국을 드나들며 오랜 현지답사와 자료 수집을 거쳐 집필한 필생의 역저였다. 여왕은 88 서울올림픽 당시 한영 친선의 의미를 담아 노태우 대통령에게 이 책을 증정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여왕에게서는 독서와 답사와 체험과 명상이 결합된 현자의 통찰이 빛나게 되었다. 1999년 4월 21일 여왕은 한국의 안동을 방문해 농수산물도매시장과 하회마을, 봉정사를 둘러보고 '이곳이 바로 코리아 인 코리아'라는 말을 했다.

여왕은 이때 가장 한국적인 망탈리테, 즉 태도, 정서, 생각 등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 사고방식을 지적한 것이다. 일찍이 비숍은 국내에서는 무력하고 나태하던 한국인들이 부패한 관리가 없는 러시아령에서는 가장 유능하고 부지런한 집단이 되는 변화를 묘사한 바 있다. 여왕은 겉보기에는 소박한 경북 안동의 문화에서 일정한 조건이 되면 화려한 한류로 개화할 한국 문화의 핵을 보았다.

우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서책의 학문과 편력의 학문이 결합된, 글자 그대로의 지혜를 본다. 글로벌 문화의 정상에 있는 문화 초강대국은 자기 문화를 자랑하지 않는다. 여왕처럼 자국과 관련된 다른 나라의 문화적 본질이 무엇인지 열심히 살피고 그 우수성을 칭찬한다. 아, 이런 것이 한국 속의 한국이지요, 진짜 한국이지요, 라고 말한다. 문화 수용주의 모델로 행동하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엘리자베스 여왕은 소중한 롤모델이다. 한국은 2019년 BBC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이제 '조용한 문화 초강대국'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이 아직도 우리를 변방 국가라고 착각하고 한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해외에 알린다는 문화 팽창주의 모델로 행동하고 있다.

한류가 본격화된 이후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는 크게 격상되었지만, 한국인들이 외국에 대해 갖는 관심은 오히려 퇴보했다. 유튜브에는 중국, 일본, 베트남, 대만 등 인접 국가에 대한 반감이 넘쳐난다. 한국의 공항, 지하철, 화장실이 가장 우수하고 깨끗하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노력이 아쉬운 오늘이다.

글로벌 문화의 정상에 있다는 입장은 쉽지 않다. 우리는 많은 나라로부터 글로벌 문화를 배워야 한다. 다른 나라의 문화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수용하고 쌍방향 교류에 노력해야 한다. '코리아 인 코리아'를 말하며 활짝 웃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이야말로 공존을 향해 움직이는 시대의 흐름에서 한국이 나가야 할 자리가 된다.

소설가 이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