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지겹다' 'TV에서 뉴스 안 본 지 오래다' '지긋지긋하다' '입만 열면 거짓말'.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나눈 한국 정치에 대한 촌평이다. 국민에게 스트레스만 주고 있는 정치 상황에 대해 친구들은 '국회의원을 3분의 1로 줄이고 세비도 절반으로 줄이자' '비서진도 4명으로 줄이고 더 필요한 사람은 미국처럼 의원이 스스로 인건비를 부담해서 쓸 수 있도록 하자' '면책특권 등 국회의원의 모든 특권을 없애자' 등 국회 개혁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양극화된 이념적 갈등을 든다. 과거 영호남 지역 갈등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증가하고 있고, 여기에 세대, 남녀, 소득 등 다양한 원인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극단적 갈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지지율과 득표율에 도움이 된다면 이런 갈등을 이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조장하고 있다.
집권 여당과 야당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당 내부에서도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의견이 다른 의원에게 집단적 린치를 가하는 것은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자신의 기득권이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걸핏하면 소송을 제기하여 법으로 해결한다. 그야말로 정치는 사라지고 법만 남았다. 이런 정당정치에 혈세로 국고 지원을 계속해야 하나.
세계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 경쟁으로 세력 균형 구도가 재편되고 있고,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에 따라 세계시장의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끝없이 오르는 집값을 견디다 못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과도한 대출을 안고 내 집을 마련했던 젊은이들은 급등하는 이자에 언제 집이 경매에 부쳐질지 몰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월급은 그대론데 수입 물가 급등으로 생필품 가격은 수십 퍼센트씩 오르고 있고, 장마와 태풍으로 농산물 가격마저 크게 올랐다. 점심 한 끼는 물론, 커피 한 잔 사먹기도 버겁다. 상황이 이런데도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비롯한 각종 부담금도 사정없이 올라 서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데, 자영업자들은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장사가 잘되어도 영업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고,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서울에서조차 학생이 없어 고등학교가 폐교되는 상황을 맞고 있지만 세계 최저의 출생률은 개선될 기미가 전혀 없어 국가 시스템 전체의 붕괴가 눈앞에 다가오는데, 인구 소멸을 피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정책 구상은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하긴 입으로는 여야 모두 '민생'을 외치고 '협치'를 주장한다. 하지만 입 따로 행동 따로인 정치인들에게 민생과 협치는 모두 자신들의 민낯을 가릴 장식품일 뿐이다.
야당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범죄 의혹이 있는 사람을 국회의원이고 야당 대표라고 해서 수사하지 말라는 얘기다. 범죄 의혹이 있는 개인이 인권 탄압이니 수사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재명 대표는 검찰이 지난 3년 7개월간 탈탈 털어서 나온 것이 없으니 말꼬투리 잡아서 기소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과 경찰이 정말 이 대표를 탈탈 털었나. 추미애, 박범계 법무장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박은정 성남지청장 등이 그토록 덮으려 노력하지 않았다면, 초동 수사가 이렇게 부실할 수 있었을까.
김건희 특검은 또 어떤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을 그토록 샅샅이 뒤졌어도 대선 정국에서 김건희를 기소는커녕 소환조차 하지 못했다. 만일 정말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있었다면 윤석열 후보에게 결정적 타격을 입힐 김건희를 기소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특검을 하겠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특검을 시행하시라.
국민의힘은 여당답게 하루빨리 당내 상황을 정리하고 정당한 지도 체제를 확립해 정국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 이준석의 가처분 청구에 발목이 잡혀 민생을 외면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은 윤석열 개인이나 국민의힘을 위해 필요하기보다는 힘든 삶을 살아가는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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