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가진 창의성, 삶 전반에 이용" 이명호 작가, 경산서 개인전

입력 2022-09-19 11:25:19 수정 2022-09-19 17:05:13

“내 모든 그림은 새로운 것으로의 발전을 위한 그림”
9월 30일까지 경산 인포그아트센터

이명호 작가가 자신이 아끼는 작품
이명호 작가가 자신이 아끼는 작품 '부부'(2018) 옆에 서서 웃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미대를 졸업한 지 30여 년, 아직도 흰 캔버스를 마주하면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지금의 작업에 안주하지 않고 어떤 것으로 새롭게 채워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합니다."

1993년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2014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최우수상, 2015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평론가상을 수상한 이명호(60) 작가.

그의 작품은 나이대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역동적이고 위트가 넘치며 동시대의 색을 담고 있다. 작품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실루엣만 남은 형태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뒤집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이미지, 색의 파편들로 그 속을 채운다.

재미있는 요소가 가득한 팝아트풍의 그림이지만 마냥 예쁘고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작가는 "주변 환경과 분위기, 감정 등이 개입되면 객관적인 현상도 새롭게 보일 수 있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며 "연필심처럼 날카로운 색의 조각이 가득한 작품 시리즈 역시 모든 사물이 서로 엮여져있다는 불교 화엄사상에 매료돼 그리게됐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내포하는 파편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회화에서 찾기 어려운, 과감하게 시도한 요소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선명한 빛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채도를 높여 매끈하게 그려내고 디자인적인 부분을 차용하며, 흰색 등 잘 쓰지 않는 색상과 그라데이션 색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 등이다.

이명호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경산 인포그아트센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이명호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경산 인포그아트센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을 펼쳐내는 이 작가의 작업. 그는 어린시절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지못했던 것이 오히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나고 자란 울산 울주군 시골 학교에는 미술교사가 없었습니다. 중·고교 때까지 수채화를 배우지 못해 교외 사생대회에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을 내기도 했습니다. 중학생이 초등학생처럼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 신선했는지 상은 주더군요. 내 그림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고 실험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대 진학 전까지 미술 교육을 제대로 못받은 점이 오히려 창의성을 키우고 내 스타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컸던 그는 동국대 미대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이어 미술교육 석사, 유아교육과 정치학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 작가는 "우리나라는 미술 교육 자체가 저하된 편이다. 발달 단계를 무시하고 그리는 것만 가르칠 뿐 감상과 비평, 미술사 등 미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교육은 전무하다. 그러다보니 성인이 되면서 창의성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어 "어릴적은 물론, 지금도 교육 현장에서 잘못된 점을 많이 느낀다. 그림이 가진 창의적 가능성은 미술에 국한되지 않고 삶의 전반에 적용할 수 있을만큼 중요하다. 내가 깨달은 것들을 후학들에게 알려주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에게 가장 아끼는 그림을 골라달라고 하자, '부부'(2018)와 '달콤한 나태에 빠진 도시'(2011)를 꼽았다. 두 작품 모두 다채로운 색감이 돋보이는 섬세한 그림이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그는 "지나고보니 모든 그림이 새로운 그림으로의 발전을 위한 그림이었다"며 "항상 뻔한 것을 탈피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술, 담배는 전혀 하지 않고, 등산과 사색을 즐기며 자연친화적이고 감성적인 삶을 지향해왔습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작품에도 투영돼 천진난만하고 한계 없는 도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삶의 태도를 유지하며, 작업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 겁니다."

이 작가의 개인전은 경산 인포그아트센터(삼성현로 904)에서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그의 2010년대 그림부터 최근 그림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황홀한 단조로움, Acrylic on canvas, 90x90cm, 2012.
황홀한 단조로움, Acrylic on canvas, 90x90cm, 2012.
화엄경, Acrylic on canvas, 130x162cm, 2011.
화엄경, Acrylic on canvas, 130x162cm,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