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狗猛酒酸·구맹주산)'.
중국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가 한비(韓非·기원전 280~기원전 233)의 말이다. 술집에서 기르는 개는 술집 주인을 잘 따르고, 주인에게 유순하다. 그래서 주인은 자기 개가 순한 줄 안다. 하지만 이 개는 손님들을 향해서는 당장 물 듯이 사납게 짖어 댄다. 술 손님이나 술 심부름 오는 아이들이 그 집을 피하기 마련이다. 술은 팔리지 않고, 급기야 시어서 못 마실 지경이 된다. 그래도 술집 주인은 자기 개에게 문제가 있음을 모른다. 자기한테 유순하기 때문이다.
한비의 '구맹주산'은 군주가 간신배나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진짜 상황을 몰라 위험에 처한다는 비유다.
'맹구'(猛狗)를 군주 주변의 간신배가 아니라 내 속의 사나움, 내 속의 비틀어진 마음으로 바꾸어도 뜻은 잘 통한다. 내 마음 속에 맹견이 있거나 내 심보가 고약하면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대구경북(TK) 초선 의원들을 겨냥해 "시민들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정치인들은 오늘도 초선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전위대가 돼서 활동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 모멸적인 발언에 TK 초선 의원들은 한마디 대꾸가 없었다. 무대응에 패기라곤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정치부 기자는 '이 대표가 워낙 싸움닭'이라 '안 엮이는 게 상책'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고 평했다.
TK 초선 의원들이 패기 없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이 전 대표가 그만큼 '사납다'는 말도 된다. 개가 사납게 짖어 대는 술집에 손님이 올 리 없다. '양두구육, 신군부, 개고기' '경기 전에 칼로 (상대방) 옆구리 푹 찌르고 시작하는 황제' '전위대' 발언으로 이 전 대표가 무엇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서 사람(세력)이 떠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는 명석한 두뇌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명석함, 철학, 명분 등 모든 요소들은 결국 세력(勢力)을 얻기 위함이다. 일일이 따지고 싸우자고 들면 세력은 형성되지 않는다. 나아가 신박한 말, 기막힌 비유로 '말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서 '내가 옳고 상대가 틀린 것'도 아니다. 요즘 보면 '이준석이 명석하다'는 세평(世評)에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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